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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 최우. 김지유 작가

by 흐르는물


한국미술재단 아트버스카프에서 최우 작가, 김지유 작가의 2인 전(2025.3.14~3.26) '순례자'를 보았다. 작품과 제목의 어울림이 궁금한 전시였다. 사진으로 보는 것이 아닌 진품을 통해 작품의 느낌을 알고 싶은 전시였다. 예전에도 전시작품을 본 적이 있었지만 그 변화의 느낌이 궁금했다. 두 작가의 공동전시는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어울림이다.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은 다르지만 의미전달에서는 합의를 이룬 것 같다. 전시된 두 작가의 작품 성향은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달랐다. 작품의 주제도 색감도 다르다. 그렇지만 그 의도를 탐색하면 어딘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마음속 울음 같은 것을 감추고는 조금씩 꺼내어 탐색하고 되뇌는 행위 같다.



1. 최우 작가


최우 작가의 작품은 두상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 모습 속에서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언듯 보면 진흙으로 빛은 조소 작품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녹슨 칠판에 드러난 이미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액자와 바탕색을 검게 함으로써 강한 대비와 강조를 보여준다. 그간 작업해 왔던 작품을 떠나 전혀 다른 작품 성향을 보이고 있다. 예전의 작품이 마음속 깊은 생각을 꿈처럼 표현했다면 오늘 두상 작품은 내면의 고민에 대한 마음속 갈등의 심화 곧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완의 작품으로 정리되어가고 있는 심상의 표현 같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 백팔나한상을 떠올렸다. 다양한 표정 속에 드러나는 인간의 오욕칠정 五慾七情을 드러내는 심연의 갈등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 아닐까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상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정밀하게 다듬어진 것이 아닌 투박함 그대로 다듬은 사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듯이 작가가 그동안 작품을 해오면 겪었던 과정의 순간들이 새로운 변화의 과정을 이루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처음 작업을 하면서는 여러 가지 힘든 과정을 이겨내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들었다. 그때에 이루고자 했던 작업은 자신의 꿈과 희망이었을 것이다. 예전의 작품 속에서도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형상을 제대로 드러낸 적이 없다. 무면의 얼굴 또는 점 하나로 대략적인 흔적으로 표현하며 그 생각을 알 수 없게 했다. 그 속에 담긴 것은 자신의 가려진 얼굴처럼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 그리고 실낱같은 희망에 대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 감정의 계곡을 걷고 있는 작가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면 작가는 많은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심연의 수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울을 봐야만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은 자신의 얼굴을 스스로 조각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듯이 말이다. 그 운명의 조각이 완성되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인간 내면의 쌓여가는 그 무엇을 통해 형상이 완성되어 가듯이 작가의 두상에서도 어느 날 그 형태를 온전히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깨달음의 길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나한상을 조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새겨 넣듯이 작품은 심연의 수렁에서 빛을 만났을 때 완성되어질 것이다.



2. 김지유 작가


김지유 작가의 작품은 꿈속의 모습을 보는듯하다. 꿈이 아니라면 몽상의 세계다. 주제를 붓선을 살려 윤곽만을 통해 보여준다던가 그림 속 인물의 대상은 선이 분명하지 않다. 흐릿하거나 뭉뚱그려져 있다. 혼란스럽기도 하고 몽혼적인 분위기 속에 젖은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은 내면에 쌓여있는 욕망의 억압 같은 것이 보인다. 나체의 흐릿한 모습, 웅크리고 있거나 정면을 보지 않고 등을 보이는 인물, 숲에 가리어 있는 모습 등 드러내기 어려운 자신만의 비밀 같은 이야기가 있다. 드러낼 수도 드러내고 싶지도 않은 그렇지만 드러내야 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속에는 마음 상처 같은 아픔과 고뇌 그것을 벗어나고 파하는 마음의 갈등이 있다.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어진 심연의 구렁텅이에 담겨있는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다. 어쩌면 혼몽 속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의 울림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은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내면의 모습이다. 때로 현실과 꿈의 세계를 뒤바꾸고 싶고 그 몽유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순간을 탐닉하기도 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다. 어느 순간 웅크린 모습에서 벗어나 활짝 열린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속에는 내면의 갈등에 대한 은유다. 작가는 이야기를 표현방법에서 찾았고 그 대상을 명확하지 않게 하고 또는 색조를 통해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기도 한다. 슬픔의 깊이를 파란색에서 찾았다면 내면의 갈등은 붉은색과 황토색 갈색 같은 것을 통해 메말라가는 정서적 위험성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때로는 사물의 모습을 하나의 색채 속에 형태만 드러냄을 써 동화되어 가고 흡수되어 가는 불안감을 나타내고 때로는 색 대비를 통해 감정의 선을 명확히 보여주려고 했다.


이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혼란의 심상이기도 하지만 인간 누구나 지니고 있는 두려움이다. 때로는 벗어나고 싶고 숨고 싶어지는 고통이다. 그 순간을 헤쳐 나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어느 날에는 다 벗어난 듯하다가도 금방 제자리에 머물고 있음을 작각하게 되는 현실이주는 고통이다. 누구나 지니고 있는 아픔이지만 나만이 더 가혹할 것 같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종종 더 깊은 방구석으로 스스로를 몰아넣는다. 그 한계에 이르렀을 때야 내가 서 있는 위치를 깨닫게 되고 그 방황의 종점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붓을 통해 시원스럽게 흐르는 선은 심연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한줄기 희망과도 같다고 할 것이다. 그리을 통해 그 고통을 드러내고 내부를 청소하는 행위와 같다.



두 작가는 심연의 수렁에서 벗어고자하는 마음을 순례자의 모습으로 드러냈다. 그 행위를 통해 구도의 기쁨을 얻는 것처럼 작가 자신도 해방의 기쁨을 얻고 한다. 순례자는 구도의 길을 쫓는다. 그 걸음은 심연의 깊은 우물을 길러내기 위한 힘이다. 그리고 그 우물을 퍼올릴 힘이 만들어졌을 때 순레자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목을 축인다. 오늘 두 작가의 전시는 고통과 방황 갈등이라는 인간 본연의 탐심에 대한 깊은 사유다.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내면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 가는 관객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탐욕이다. 우리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현실로 돌아올 때 심연의 고통에서 깨어나는 순간이 될 것이다.




* 2025.3.20 아트버스 카프 전시를 보고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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