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다시 보게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킨 그림

예술 감상은 상상력의 확장이다

by 흐르는물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행위를 넘어 상상과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 작품을 통해 작가와 교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사물 자체보다 마음속 상상에 빠져드는 순간이 있다. 그 상상은 때로는 작가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에서 작가와 새로운 대화를 시작한다. 상상은 현실을 벗어난 허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


특히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마르크 샤갈 그리고 겸재 정선의 작품은 상상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일상의 모습을 벗어난 현상과 마주한다. 우리는 그림을 통해 세상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감각을 얻는다. 그 감각을 통해 드러나지 않은 세상의 또 다른 모습을 탐색한다. 가라앉았던 감정선이 최고조에 이르는 순간이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의 작품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림도 드물다. 오래전 프랑스 니스 출장 중 우연히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축 늘어진 형태와 뒤틀린 사물들 앞에서 당황스러움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 낯섦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았다. 그의 대표작품인 〈기억의 지속, 1931> 속에는 녹아내리는 듯한 시계가 황량한 풍경 위에 흩어져 있다. 그 시계를 보는 순간 저 공간에서는 시간을 초월하여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간의 개념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시간은 멈추어져 있을 수도 있고 영원히 지속되는 환상의 세계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 순간 관객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현실의 질서를 뒤흔드는 달리의 상상력은 보는 이의 내면에서 무수한 해석이 자라나게 한다. 그는 논리의 틀을 깨고 무의식의 세계를 펼쳐 놓았다.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집착을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세계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창구를 찾기도 한다.


또 다른 작품,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이미지의 배반, 1929>을 보자. 파이프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관객은 그림과 언어 사이에서 멈칫하게 되고 당황하게 된다. 눈앞의 그림은 분명 파이프인데, 작가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 한다. 우리가 아는 진실의 불완전함을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은 파이프라는 진실 속에 진짜가 아니라는 현실의 의미를 탐색한다. 작가가 사물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관객은 지금과는 다른 사고의 확장을 통해 작품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 속의 문장은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과 의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마르크 샤갈 <나와 마을, 1911>에는 동물과 인간, 꿈과 기억이 함께 있다. 즉 상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사람과 동물의 얼굴이 서로를 응시하고 집과 나무가 뒤섞인 공간은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꿈속 풍경이다. 샤갈은 일상과 환상을 자유롭게 오가며 관람객에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어내도록 한다. 그림 속 세계는 끝없이 변화되는 상상의 무대가 된다. 현실과 상상, 기억과 환상이 공존한다. 현실 속에 상상과 기억을 담고 미래의 꿈을 담았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철학을 시적으로 표현한 무대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꿈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 수 있다. 누구든지 상상하고 꿈꿀 수 있지만 아무도 표현하지 않고 잊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고 싶은 그런 그리움이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인왕제색도, 175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는 또 다른 상상력을 불러온다. 짙은 먹빛 구름이 인왕산을 휘감으며 안개처럼 번지는 실경은 현실보다 더 장엄하고 몽환적이다. 보는 이는 산속에 들어가 길을 잃은 듯한 감정에 휩싸이고 자연의 신비로움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즉 자연의 신비를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실제 풍경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상상하게 한다. 검은 먹이 만들어 낸 세상은 자신의 경험일 수도 있고 현재의 마음 일수도 있다. 자신의 마음을 자연의 신비함 속에 감추어주고 생각의 깊이를 더하는 사유의 공간이 된다. 드러내지 않은 풍경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을 찾는다.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안개가 걷히고 산 능선이 환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미몽에서 깨어나는 순간이다.


달리·마그리트·샤갈의 작품은 현실의 규칙을 깨고 왜곡함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무의식과 감정을 표현했다. 그런 반면 정선은 자연을 통해 현실 너머의 이상 세계를 그리며 사색과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 결국 그림으로 드러내는 달리의 시간, 마그리트의 언어, 샤갈의 꿈, 정선의 안개는 모두 상상을 통해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예술의 힘은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사고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 결국 예술은 사물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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