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작가, 닮은 듯 닮지 않은 얼굴

by 흐르는물

하나의 작품을 오랜 기간 보게 되면 작품은 편안해지고 작가를 잘 알고 있는 듯 친숙한 느낌을 받는다. 그렇듯이 작품을 감상할 때 우리는 종종 그 작가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의 성격, 삶의 태도, 내면의 세계가 그림 속에 스며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품과 어울리는 이미지란 결국 눈에 보이는 형상과 작가의 내면세계가 만들어내는 심상의 결합이다. 그러나 막상 작가의 실제 삶을 알고 나면, 작품 속 메시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즉, 예술적 표현과 인간 개인으로서 모순된 상황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혹스러움이면서도 작품을 다시 바라보는 기회가 된다.


여기 카라바조, 피카소, 드가의 삶을 보자

카라바조(Caravaggio, 1571–1610)는 <성 마태오의 소명>,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등에서 성서적 주제를 강렬한 사실주의로 표현하며 바로크 미술의 혁신을 이끌었다. 그는 빛과 어둠의 극적인 명암 대비로 신앙과 구원의 긴장감을 생생히 전달했다. 하지만 현실 속의 그는 폭력 사건에 연루되어 살인 혐의로 도망 다니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경건한 종교화를 그린 화가에게서 난폭한 모습을 보는 것은 예술과 현실의 역설을 극명하게 알려주는 것이다.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게르니카, 1937>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평화를 호소하는 20세기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총부리가 겨누어지고 영혼 없는 인물묘사에서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의 사생활은 종종 이기적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인류의 평화를 외친 작품을 하면서 주변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예술과 삶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 역시 발레리나의 섬세한 움직임을 포착하며 아름다움을 존중하는 그림을 남겼다. 그의 그림 속에서 발레리나는 화려한 움직임으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현실 속의 그는 여성에 대해 냉소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그의 작품 속에 있는 우아한 무희들은 어쩌면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작가의 예술적 표현의 대상으로만 존재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이런 모습에는 발레리나의 무대 위 화려함 속에 숨어있는 부정적인 모습과 자신이 겪었던 가정사의 불행한 일들이 반영된 결과라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결국 작가의 작품에는 시대적 상황과 자신의 경험이 함께 녹아있다.


이처럼 작품과 예술가의 삶 사이에 드러나는 큰 간극은 예술가의 복합적인 인간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작가의 인성과 반드시 일치해야 하는가. 또는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관람객 입장에서는 두 시선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작품만으로 예술의 가치를 느낄 수도 있지만, 작가의 삶을 알고 보면 작품 속 빛과 어둠의 의미가 더욱 깊어지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진정성과 모순된 행동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신비주의 형태의 예술가도 완벽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의 불완전함을 통해 세상을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들은 자기 내면의 존재를 인식하였기에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감추고자 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관람객이 작품을 볼 때는 그 뒤에 숨은 작가의 이면까지 함께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의 삶의 이야기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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