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희로애락의 굴곡진 그래프를 그리며 살아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가야 하는 삶의 궤적이다. 그런 삶의 모습을 어느 순간 자기 스스로 또는 주변을 통해 실감하고 공감한다. 기쁨은 행복한 순간의 발현이다. 결혼, 식사, 만남, 휴식, 놀이 등 어느 순간의 감정이다. 그 순간은 인생에 있어 큰 변화의 사건이 되기도 하고 일상의 소소한 과정 속에 일어나는 일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 표정을 표현한 작품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마티스, 샤갈, 피터 브뤼헐, 김홍도의 작품을 통해 그 순간을 찾아본다. 먼저 마티스와 샤갈의 그림에서 기쁨의 순간을 찾아보자. 붉은 인물들이 원을 그리며 손을 마주 잡고 춤추는 장면이 있는 마티스의 <춤, 1910년>은 단순한 색과 형태가 주는 강열함에서 원초적인 인간의 생명이 느껴진다. 그 율동에서 강강술래를 보는 것 같은 어울림의 기운을 본다. 그 에너지의 집약은 몸의 움직임이 주는 경쾌함을 통해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춤과 리듬이 주는 활력의 기쁨이다.
그런 반면 마르크 샤갈의 <생일, 1915>은 연인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풍경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현실을 뛰어넘는 황홀함이 찾아온다. 얼마나 기쁘면 몸이 떠오를까. 세상을 모두 얻었다. 날아갈 것 같다. 아니 이미 마음은 하늘을 날고 있다. 그의 작품은 사랑의 힘을 드러내준다. 비현실적인 몸짓을 통해 삶의 무게를 잊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삭막한 현실을 벗어나 내가 만든 세상에서 영원한 행복을 찾는다. 싯구 한 줄 없는 사랑의 서사시다.
또 다른 작품
피터 브뤼헐의 <농민의 결혼식, 1567경>과 김홍도의 <씨름, 18세기>을 보면, 두 작품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 축제를 통해 기쁨을 표현했다. 두 작가 모두 사람들의 일상을 집중적으로 표현하였다는 데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진솔하게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 그 삶 속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피터 브뤼헐은 일상 풍경과 사람들의 삶을 그리는 화가로 <농민의 결혼식 The Peasant Wedding>은 사람들과 잔치의 즐거움을 표현한 대표작이다. 결혼은 개인에게 있어 숭고한 일생의 기회이자 축복이다. 이러한 기쁨을 가족뿐 아니라 온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눈다. 작품은 기쁜 일을 마을 전체가 함께 나누는 환희의 순간을 보여준다. 긴 상 위에 앉아 음식을 먹고 마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아이는 아예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음식이 떨어질까 쉴 새 없이 나르는 사람들의 모습에는 한창 무르익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이것은 소박한 일상의 기쁨이다. 함께할 수 있기에 감사한 것이다. 화려한 꽃장식이 없어도 값비싼 보석이 없어도 충분한 일이다. 그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는 이미 따뜻한 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더 사실같이 더 풍성하게 보여주는 것이 김홍도의 <씨름, 18세기>이다. 사람들이 씨름을 구경하며 손뼉 치고 웃는 모습에서 씨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씨름 중인 두 사람의 표정에서 관객은 즐거움을 더한다. 한쪽다리가 들어 올려져 위기에 처한 사람의 표정과 힘껏 들어 올린 사람의 힘쓰는 표정이 압권이다. 관객의 표정에서는 결정이 난 것 같은 모습이지만 저러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막상막하를 보여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담겨있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은 관객이나 엿장수 모습에서 시간의 흐름을 읽는다. 씨름판의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서민들의 기쁨을 찾는다. 이때만큼은 슬픔도 아픔도 모두 잊고 흥겨운 분위기를 즐기면 된다. 김홍도의 그림 속에는 인간사의 모든 표정이 담겨있는 듯하다. 씨름을 관람하는 사람들 표정 하나하나가 재미있게 표현되었다.
이렇듯 기쁨은 우리 삶의 에너지다. 때때로 단체로 개인으로 또는 상상과 현실 속에서 나타난다. 신기루와 환상 같은 사라짐이 아니라 뇌기를 맞듯이 낙인을 찍어 버린다. 화가가 그림으로 표현하는 기쁨의 순간은 행복의 본질을 탐구하는 모습이다. 그 형태와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치의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와 배경을 초월하여 세상의 벽을 넘어 누구에게나 행복한 이미지로 남아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