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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Nov 07. 2022

장수탕선녀님이 가르쳐 준 내가 글을 쓸 이유




                                                                             

얼마 전, 아이와 함께 뮤지컬 <장수탕 선녀님>을 보았다. 백희나 작가의 그림책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 선녀 할머니가 장수탕에서 살게 된 이유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선녀와 나무꾼'의 선녀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나면 전혀 다른 선녀를 마주한다. 500년간 장수탕에 사는 선녀 할머니. 이 세상 유일한 이야기를 가진.



6살 아이, 주인공 덕지는 선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 그거 제가 아는 이야기 같은데.. 그래도 끝까지 들어볼래요!"라고 말한다. 나는 선녀 할머니가 어쩌다 장수탕에서 지내게 되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내용 설명은 자제하겠다. 다만 내가 그 지점에서 느닷없이 눈물이 터졌는데, 할머니의 이 한마디 때문이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고맙다. 덕지야.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두 볼이 다 젖을 정도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꺼억거리는 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입을 막아야 했다. '그래, 나는 '그날' 내가 겪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아무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구나...' 선녀 할머니의 말은 비로소 내 가슴속 뜨거운 불덩이의 원인을 찾게 해 주었다. '그때, 한 명이라도 내 말을 온전히 들어주었더라면.... 이거였구나! 내가 늘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



2017년 9월의 마지막 날, 나는 내 인생에 트라우마적 사건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만한 장면에 홀로 서 있었다.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 둘러싸여 철저히 혼자였다. 그 후, 나는 그때의 나를 안아줄 방법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네 작은 글쓰기 모임에서 그때의 나를 조금이나마 드러내기까지 5년이 걸렸다. 이제 나는 그때의 나를 한없이 가여워하느라 놓치고 지낸 시간들을 글로나마 되찾고 싶다. 그리고 지금 나의 일상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싶어 할까? 나의 일상을 한 겹 한 겹 벗겨내 글에 담아내다 보면 가슴 한편 웅크린 그때의 나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일상 속에서 찾은 감사와 깨달음으로 조금씩 마음이 단단해질 때, 2017년 가을의 외로웠던 나를 온전히 끌어안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다. 무엇을 새롭게 이야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 어두운 구석자리에 웅크리며 손 내밀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진짜 이야기,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일상의 작은 조각들을 부지런히 주워 모으자. 그래, 오늘부터 다시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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