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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지니 Nov 07. 2022

"저기, 빨대 가져가세요."

                              

'휴~ 오늘도 무사히 보냈다.'


지현은 둘째 햇살 이를 등원시키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요 며칠 아이와의 등원 길이 길어지고 있다. 햇살이가 빙글빙글 아파트 단지를 마음껏 다 돌고 나서도 꼭 들러야 하는 등원 길 마지막 코스가 있다. 동네 빵집 P. 익숙한 동선으로 우유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더니 언제나 같은 고민, "오늘은 딸기 우유로 먹을까?" 하고는 늘 먹던 초콜릿 우유를 집어 든다. 오늘의 빵은 에디! 똑같은 카스텔라인데 포장 비닐의 캐릭터를 보고 빵을 고른 햇살이의 만족스러운 얼굴에 지현은 오늘도 카드를 내민다. "계산할게요~"






오늘은 집에서 나와 5분 거리의 어린이 집으로 가는데 거의 1시간이 걸렸다. 목도 마르고 라테 아이스를 단숨에 쪼옥 빨아 목구멍으로 넘겨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다. 지현은 평소 지나기만 하던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오늘도 아이 등원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의 수다가 bgm을 이긴다. 지현은 주문받은 음료를 만드느라 손이 바빠 보이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차례를 기다렸다. 여자가 힐끔 돌아본다. 미간에 패인 주름 사이로 짜증스러운 기운이 느껴졌다. 여자는 한 번 더 지현을 돌아봤다. 지현을 바라보며 미간을 살짝 움직인다. '주문할 음료를 말하란 뜻인가?' 지현은 여자가 자기 앞으로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뭐 하세요?" 여자가 대뜸 물었다.


"네? 아, 음료요? 저 라테 아이스 한 잔 가져갈게요."


여자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가락 하나로 카드를 대야 할 방향을 가리켰다.


지현은 삼성 페이로 계산을 하기 위해 엄지 손가락 지문을 휴대폰 옆 날에 갖다 대며 여자가 손으로 가리킨 결재 스크린에 폰을 가까이 놓았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지 결재가 안 된다. 지현의 귀에 여자의 짜증 섞인 한숨이 들렸다.


"아 이게 갑자기 안되네요. 다른 카드 드릴게요. 잠시만요." 지현이 폰을 내려놓고 가방에서 다른 카드를 꺼내려는데 여자가 말했다.


"여기로 해볼게요." 여자는 지현의 휴대폰을 휙 가져가서 자기 앞에 놓인 포스팅 기에 갖다 대었다. 지현이 당황해할 틈도 없이 결재가 끝났고 폰은 다시 지현의 앞에 놓였다. 여자는 또다시 커피 기계 앞에 서서 현란한 손동작으로 '처리할' 음료를 만드는데 착수했다.





지현은 여자의 행동이 아무리 생각해도 무례하게 느껴졌다. 커피 기계에서 커피콩이 갈아져 나오는 동안 지현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커피 받을 때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어! 뭐라고 하지?' 지현은 자신이 겪은 좀 전의 상황을 여자랑 이야기해 볼까 하다가 관두기로 했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바쁜 시간에 여자가 지현과 그런 대화에 제대로 응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커피를 내린 컵에 우유를 붓고 있다. '여자가 오늘 아침에 기분이 별로였나?'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지현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래도 무언가 한 마디를 해야겠는데 뭐라고 하지?' 지현의 머릿속이 더 바빠졌다.



아이스라테가 나왔다. 지현은 커피를 받고 여자를 보았다. 여자도 지현을 보았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지현이 외치자 여자가 놀란 눈으로 갑자기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아, 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여자 옆에서 내내 바쁘게 일하던 뒷모습의 남자 사장이 지현을 뒤돌아보았다. 지현은 고개를 까닥거리며 마스크 뒤로 웃음을 지었다. 지현은 순간 그 좁은 공간에서 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지현이 어깨를 펴고 발걸음에 신경을 쓰며 문을 나서는데 여자가 지현을 불렀다.


"저기~ 여기 빨대 챙겨가세요. "


지현은 뒤를 돌아 빨대를 하나 챙기며 생각했다.


'아... 완벽한 그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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