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마녀와 비폭력대화

by 플로우지니

최근 내가 막연히 생각만 하던 일을 실천했는데 바로 9살 아들, 태양이와 친구들이 함께하는 낭독 모임을 만든 것이다. 이름은 오낭클, 오분낭독클럽이라는 뜻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낭독하는 습관을 다지기 위해 만들었다. 오낭클마을 카톡방에 10명의 아이들과 엄마들이 모였다. 나는 아이들의 동기 유발을 위해 학교 근처 편의점 사장님과 상의해서 특별 쿠폰도 발행할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외적 보상 없이도 매일 오낭클마을 카톡방에 나누었다. 저마다 아름다운 개성을 뽐내며 이 세상 유일하고 소중한 목소리를 내는 일에 진심을 다했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만난 한 엄마가 말했다.

"숙제는 하기 싫어해도 오낭클 낭독은 꼭 하려고 한다니까. 한 번은 아이가 낭독 녹음을 하는데 아빠가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를 내서 울고 다시 한 적도 있어. 얼마나 귀엽던지."

내 아들의 독서 습관을 만들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흐뭇하고 행복했다.

두 달 전, 9살 아들이 다니는 그림책 학원에서 가족신문을 만들어왔다.

"아빠는 집안일을 하시고 엄마는 우리에게 책을 읽어주시거나 낭독을 합니다."

나는 아이들 눈에 비친 우리 모습에 웃음이 났다.

"아빠, 이 부분이 중요해, 들어봐." 하며 아들이 강조해서 읽는 문장은 "아빠가 힘드실 것 같습니다."였다. 아들의 눈에도 늘 집안일을 하는 아빠에게 마음이 쓰였나 보다. 나는 민망한 마음을 숨기며 말했다.

"아빠 마음 알아주는 아들이 최고네!"

빨래, 장보기, 저녁 준비, 설거지, 욕실 청소 등 집안일을 거의 대부분 남편이 하고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가끔 해외 출장을 가더라도 남편이 미리 단골 가게에서 주문해 둔 과일이 배송될 정도이니 그의 책임감은 정말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정작 나는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하거나 칭찬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그에게는 그의 수많은 장점들을 손쉽게 가려버리는 아주 고약한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이 여유롭지 않거나 자신의 기준에 반하는 상황을 만나면 상대를 통제하고 꺾어내리기 위해서 무슨 말이라도 하는 혀를 가지고 있다. 남편의 독이 묻은 혀에 휘감기는 상황이 오면 나는 죄책감과 함께 스스로 부족한 것 같은 느낌에 짓눌리는 못된 마법에 걸려든다. 그때마다 심장이 얼어붙고 머리가 뜨거워졌다. 부부 관계나 육아 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 내가 용기 내어 의견을 말하면 그는 나를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는' 욕심 많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의 대화 요청은 그에게 늘 시비 거는 일이었고, 그것은 그를 '짜증나'게 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나만 노력하면 되는 결론으로 이야기를 끝냈다. 그는 말했다.

"너만 힘드냐? 나는 더 힘들어.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어떻게 사람이 하고 싶은 거 다하고 사냐. 넌 너무 이기적이야."

우리 집 사정을 조금 아는 친구는 "전형적인 주부스트레스인데?"라고 했다. 재택근무를 자주 하는 남편은 내가 출근을 할 때도, 휴직 중일 때도 주로 저녁을 준비한다. 체중 조절을 위해 저녁을 먹지 않는 남편은 우리가 저녁을 먹는 동안 디저트를 준비한다. 식사 후에 내가 아이들과 숙제를 하거나 놀이를 하는 동안 주방에서는 90년대 발라드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싱크대 앞에 유튜브를 켜 놓고 설거지를 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무감각한 그의 언어 사용이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나를 붙잡아 세운다.

퇴근 후, 내가 간혹 피곤해서 소파에 잠시 기대 있기라도 하면 "네가 좋아서 직장 다니는 건데 애들 볼 시간에 그러고 있을 거면 당장 그만둬!"라며 다짜고짜 짜증을 퍼부었다.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은 나의 마음은 지나친 욕심이었다. 나는 집안일을 챙기는 남편이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는 내 집에서 늘 숨이 막히는 기분에 시달렸고 작년 가을 일이 터지고 말았다.

어느 날 밤, 나는 잠을 자다가 숨이 가빠져 이대로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욕을 마구 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인지하면서도 스스로 놓아버린 듯했다. 나는 내 목구멍에서 빠르게 요동치는 심장소리를 들으며 몇 개 안 되는 내가 아는 욕지거리를 총동원해 뱉어냈다. 급기야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거실 복도를 기어서 현관 앞까지 갔다. "뭐 하냐 잠 안 자고?"라고 말하던 남편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따라 나왔다. 나는 숨을 쉬러 밖을 나가야 한다고 소리쳤다. 남편이 조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나한테 말을 했어야지...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악에 바친 눈물이 터졌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당신 때문에 힘든 거라고!" 그리고 아까보다 더 또렷하고 자신 있게 욕을 했다.

엉거주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남편은 갑자기 내 등에 가만히 손을 대었다. 남편 손의 온기가 내 차가운 등을 덮어 주었다. 나는 그제야 욕을 멈추었다. 나의 거친 숨소리와 그의 옅은 숨소리가 섞인 긴장감이 감도는 공기를 깨고 남편이 말했다.

"미안... 내가 노력할게."

나는 그 순간 깜짝 놀랐다. 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남편이 나의 아픔을 알아주는 것 같았다. 평소의 나라면 뭐가 미안하냐고 따져 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흐릿하지만 분명했던 그와 나 사이의 연결 속에 머무르고 싶었다. 나는 조용히 흐느꼈고 내 등 뒤에 놓인 남편의 손이 나를 토닥였다. 나는 12년의 결혼 생활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미안해' 소리를 들었다.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듣고 싶었던 한 마디였다. 우리는 센서등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하는 현관 앞에 그대로 앉은 채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던 내 심장이 제자리를 찾아갈 때까지 기다렸다.

8년 전, 남편과 내가 설거지 후에 젓가락을 어떻게 둘 지에 대해 서로가 맞다고 싸우던 부끄러운 시기에 마샬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를 만났다. 동네 엄마들과 함께 낭독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할 거리를 찾는 과제를 함께 해 나갔다. 그때 내가 비폭력대화를 공부하는 목적은 남편의 못된 말버릇을 고쳐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공부했으니 얼마나 엉터리였을까. 오만한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애처롭다. 나는 비폭력대화에 관심을 갖고 연습 모임을 하면서도 그의 수많은 장점보다는 고약한 결점 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느새 그 결점이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커져서 나와 찰싹 붙어버린 줄도 모른 채 나는 여전히 나쁜 습관에 갇혀 그의 결점만 보았다. 독단적이고 편협하다고 그를 손가락질하던 내가, 그를 바라보는 나의 편협한 시각과 생각자체가 어느새 나의 고약한 결점이 되어 버렸구나 깨닫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남편을 둔 나를 주변 엄마들이 부러워할 때 나는 늘 그의 결점을 끄집어내어 그를 깎아내리는 데 열을 올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더 자괴감에 빠졌고 고립을 선택했다. 사람들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성격이라고 알고 살아온 내가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 시간을 선물로 만들어 준 나만의 낭만이 있었는데 바로 낭독이었다. 낭독은 내 가슴에 박힌 독한 말을 씻어내 주고 어둠 속에서 혼자 웅크리고 있는 내면의 나에게 긍정과 희망의 언어를 들려주었다. 낭독은 내 존재가치가 훼손당했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고, 신성한 에너지가 솟게 하는 원천이었다. 4년 이상 매일 낭독을 실천하면서 얻은 믿음은 내가 나의 호흡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내 호흡상태를 인지한다는 것은 유연한 지혜가 내 마음 한 자리에서 나를 반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같았다. 나의 지혜는 나를 몰아세우는 언어 앞에서 나에게 함부로 부딪히지 말라고 알려주고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을 차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가만히 내 곁에 있어주었다.

나는 2주에 걸쳐 <Missing May-메이 아줌마> 낭독을 끝냈다. 문장들 사이로 이름 모를 감정이 치솟을 때마다 몇 번이고 쉬었다가 낭독을 이어갔다. 따스한 바람에 흩날리는 'May' 바람개비를 상상하자 얼어붙은 마음 한구석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날개뼈의 찌릿함을 지나 뒷목을 타고 올라온 뜨거운 물이 나의 두 눈으로 흘러나왔다. 오브 아저씨에게 바람개비가 있다면 나에게는 낭독마녀가 있다.

나는 스스로 해낼 수 없는 말들을 낭독을 통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것에 큰 만족을 얻었다. 때로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단어 조각들을 동그라미로 건져내고 그것들을 잇기 좋아했다. 단어가 의미로 연결되는 길에 느낌을 만나고 그 속에 담긴 욕구를 발견해 내기도 했다. 느낌말과 욕구말들을 모아 커다란 냄비에 부어 넣고 낭독마녀의 마법 스틱으로 휘휘 저으면 결국 사랑만 남는 수프가 만들어졌다. 신경을 안정시키고 마음속에 사랑이 퐁퐁 솟아나는 낭독마녀표 사랑수프.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남편은 무엇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사는 걸까? 연애와 결혼생활 총 18년을 함께하면서 남편에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나를 표현하는 데에 몰두하느라 남편의 표현방식을 보지 못했다. '미안해'라고 말하는 대신 저녁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 한 가지를 더 준비하는 것. 이것이 미안함을 표현하는 그 사람만의 방식이었음을 이제 조금씩 알 것 같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와 남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모두 존중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을 희생하거나 옳고 그른 판단 속에 처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는 각자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에너지가 자유롭게 바람을 탈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찾아나갈 창의성이 있음을, 그 길에는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함께해야 의미가 있음을 안다. 단, 두 아이의 부모로서 말고 나는 나로서,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빠, 이 책 같이 보자. 아빠도 책 읽는 거 녹음해 줘. 출장 갔을 때 들을 거야."

5살 햇살이가 말했다.

"녹음을 왜 해. 그냥 해."

나는 태양이와 책을 읽으면서도 남편의 대답이 궁금했는데 역시 예상한 반응이었다. 햇살이는 한번 더 졸라댔다.

"오빠처럼 나도 녹음할 거야. 대신 아빠가 먼저 해 주면 안 될까요?"

햇살이는 두 손으로 꽃받침을 만들어 작고 귀여운 얼굴을 받치며 말했다.

"알았어. 이렇게 예쁜 아빠 딸이 해달라고 하면 해야지."

나와 태양이는 눈을 마주치고 씩 웃었다. 우리는 <샌드쿠키의 비밀> 그림책을 들고 함께 책을 읽는 햇살이 와 아빠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샤샤핑과 말랑핑이 손에 샌드 쿠키를 들고 서로 마주 보고 있어요."

녹음 어플을 켜고 낭독을 시작한 남편의 읽기 속도가 너무 빨라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아무 소리 하지 않기로 한다. 나와 태양이도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밤 9시, 한 방에 모여 낭독하는 목소리가 뒤섞여 서로 잘 어우러진다. 어떤 자장가보다도 달콤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람들 마음속엔 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