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o Jan 02. 2020

겉절이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맛

평온한 오후 TV를 보면서 낮잠에서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까지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는데

누가 현관문을 막 두드린다
벨도 안 누르고
심지어는 누구세요 라고 물어도 대답을 안 한다

현관문 앞에서
누구세요 다시 한번 물었을 때 들려오는
ㅡ나여~ 투박한 즐라도 사투리

할머니다!

문를 열었는데 할머니는 현관에서 더 들어오지도 않고
보자기로 싼 무언가 한 꾸러미와 붕어빵 한 봉지를
내민다

하나로마트를 갔더니 봄동이 비싸서 많이는 못 사고
두 개 사서 담았다며
좀 들어오시라 도 들어오지도 않고 휭 하니 가버리신다

보자기를 열자 풍기는 겉절이냄새는
일하다 말고 나온 강씨와 내가 그걸 그냥 냉장고로 넣을 수 없게 했기 때문에 당장 뚜껑을 열고
하나 씩 손으로 집어 먹었다

함께 내뱉는 소리
ㅡ으ㅡ아 맛있다

뿌듯하게 냉장고에 집어넣고

붕어빵을 하나 먹고 있자니
겉절이가 아른아른

저렇게 밥이랑 겉절이를 좀 담아
낮잠자는 아이들 옆에 앉아서
한 입 했더니

이거는
뭘 봐도 뭘 먹어도
어디에 가도
누구를 만나도 가질 수 없는
히이이이이일링 이라는 완벽한 느낌



그냥 와아

 마음의 주름을 펴 주는
고마운 우리 할머니 맛


할머니한테 전화해야지
너무 맛있어서 앉은 자리에서 밥 한 그릇 했다고

그럼 할머니는
금새 다른 얘기를 하면서 딴 소릴 막 하겠지만

아 아이들이 깼다
그래도 막막하지가 않네 하하하하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