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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o Jan 29. 2020

저 아줌마한테는 인사하지 마

옹졸하고 찌질한 어미

큰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서류 낼 것이 있어서 갔다 오는 길에 마침 큰 아이가 오전 방과 후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겹쳤다.

간식으로 무얼 먹을까, 무얼 사갈까, 먹고 들어갈까 하며 도란도란 떠드는 와중 내 시야에 한 사람이 들어왔다.

동네에서 유일하게, 아는 척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어차피 다시 볼 일도 없는 사람인데 뻑하면 마주치는 것이 참 얄궂다 싶은 사람인데, 말하기도 껄끄러운 내막은 이렇다.

여느 부동산 중개업자가 그렇듯 양측의 계약 성사를 위해서 듣기 좋은 소리로 분위기를 유하게 만들고 계약이 잡음 없이 진행되도록 애쓰는 부분이 있다지만, 이 부동산의 중개업자가 우리가 집 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실수 아닌 실수를 했었다.

나와 너무나도 친절하게 통화를 하다가 통화가 종료된 줄 알았던 그가 내가 듣고 있는 줄도 모르고 나에 대해서 했던 말이 퍽이나 마음이 상하는 내용이었고, 따져 물어서 무엇하나 싶은 무기력이 발동을 하였기에 결국 해소되지 못한 불쾌함은 그저 피하고 싶은 불편함이 되었다.

그 불편한 이가 하필이면 또 오늘 그 시간에 맞은편 건널목을 건너고 있었고 내 옆의 하필이면 인사성이 좋은 큰 아이가 착실하게도 그이에게 인사를 했다.

그이는 친절하게 아이의 인사를 받아주었고 나에게 안부인사를 건네었으며 내 품에 안긴 막내 아이까지 살뜰히 챙겼다.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인사를 받고 영혼 없게 받아쳤다.

그이가 지나가고 나서 나는 큰 아이에게 말했다.
ㅡ앞으로 저 아줌마한테는 인사 안 해도 돼.
당연히 아이가 땡그란 눈을 하고 묻는다.
ㅡ왜요?

대답할 말이 없다. 애미는 분명히, 동네에 아는 어른들에게 인사를 잘해야 한다고 일러두어놓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이한테 지껄였으니, 할 말이 있으래야 있을 수 없다.

대답을 하지 않고 몇 걸음 걸으니 금세 아이의 눈길을 뺏는 뽑기 기계가 마침 있어주어 아이는 잊은 듯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집에 가는 길 내내 나는 웃지도 울지도 못 하는 표정으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아이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며, 어디까지 이해해 줄 것이고, 나는 아이가 어디까지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이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의 옹졸함을,

그나마도 다듬어서 내뱉었다면 그만이겠는가.

마음을 다스리고 해야 할 말만 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적어도 자식에게는.

#오늘의 뉘우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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