칩거 2주째의 기록

어느 하루를 보내며.

by Soo

칩거 2주째.

마지막으로 밖에 나갔던 그날도 여느 금요일과 같았다.
다만 공기가 좋아 하늘이 푸르렀고, 엄마가 찍소리 못하게 공부와 독서를 끝내 놓은 큰 놈이 오늘만큼은 놀이터에 가야겠다고 성화를 부렸기에 조금은 이른 하원 시간에 동생들을 데리러 함께 나갔다.

근 한달간 하원하고 집에 가기 바빴던 둘째, 셋째는 놀이터에 간다는 큰 형아의 말에 방방 뛰며 좋아했다. 그렇게 내 품에 안긴 막내를 제외하고 마스크를 낀 우리는 놀이터에 갔고 마침 큰 아이의 친구네를 만났다.

아이들은 마스크를 낀 채 씁씁후후 신나게 뛰어놀았다. 엄마들도 마스크를 낀 채 수다를 떨었다. 숨이 막히고 답답했지만 별 수 없었다. 마스크 벗고 놀면 안 되겠냐고 묻는 아이들에게 단호하게 마스크 벗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참 불편할 텐데도 아이들은 잘도 놀았다.

여느 금요일처럼, 주말만 잘 보내면 내게도 꿀 같은 월요일 아침이 오리라. 그렇게 담담히 맞은 주말이 2주째 끝나지 않고 있다. 나도, 아이들도 밖에 한 발도 내놓지 않고 집에만 있다. 남편도 회사 외에는 외출을 삼가고 있다. 먹거리는 인터넷으로 시키고 그저 집 앞에 쓰레기를 내다 놓는다.

아이들은 늦잠을 자는 법도 없이 부지런히도 일찍 일어난다. 배가 고프면 파이 같은 것을 꺼내서 먹기도 하고 막내 때문에 잠이 부족한 내가 깨서 나갈 때까지 대부분 기다려준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눈뜨자마자 자기들끼리 노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나를 찾을 생각도 안 하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지난밤에 깨끗이 치워놓은 거실은 형형색색의 색종이와 각종 블럭들로 아침부터 눈이 쨍하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놀잇거리를 찾아낸다.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블럭이나 색종이로 뭔가를 만들고 자기들끼리 깔깔거린다. 밖에서 해야 하는 줄넘기를 가지고 와서 서랍 틈새 같은 곳에 끼워 줄을 이어놓고 밑으로 기어가기 같은 것을 하며 땀이 흠뻑 나도록 논다. 그 정신없이 즐거운 난장판의 한편에서는 8개월 막내도 의자 같은 것을 붙잡고 일어서기 연습을 열심히 한다.

새벽 6시에 시끄럽다며 인터폰을 하던 사람이 아래층에 살던 아파트에서 살 때는 꿈도 못 꾸었던 일이다. 우리 집 아래층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고개도 못 들고 굽신거려야 했겠지만 아래층은 남편의 회사이다. 덕분에 아빠는 하루 종일 쉴 새 없는 발 망치에 멀미가 날 것 같다고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이들은 바깥구경을 통 못하고 있으면서도 불평불만이 없다. 간혹 TV에 바닷가가 나오면 재작년 여름에 했던 물놀이가 재미있었다는 얘기들을 서로 나누곤 한다.

애 넷을 데리고 집에 갇혀있는 것은 어느 순간 문득, 나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라고 느끼게 만든다. 세끼를 만들어 먹이고 치우고 바닥을 쓸고 닦고 빨래를 널고 개고 씻기고 씻다 보면 하루가 가버린다. 혼자의 몸일 때도 이렇게 긴 시간을 집에만 있어본 적은 없다. 오롯이 애 넷의 하루를 책임져야 하는 지금은 지루하고 답답하다고 느낄 틈도 없이 가지각색의 일이 벌어진다. 엄청난 노동량이라고도 하기 뭣한 자잘한 조각 같은 것이 흩뿌려진, 매일이 지속되고 있다. 피로는 누적되었고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눈앞에는 끊임없이 놀잇거리를 찾아내서 난장판을 만들어 놓는 아이들을 보며, 에이, 참자, 이따 한꺼번에 치워 버리자, 에이, 내버려두자, 하는 포기 비슷한 인내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점심밥을 차려주고 나니 나는 허기가 밀려온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빵이 먹고 싶었다. 빵도 배달이 되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기에 배달어플을 켜고 빵을 주문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자고로 빵이라는 것은 그 향기로운 냄새와 매끄러운 윤기에 이끌려 홀리듯 집어 담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당최 사진으로 보는 메뉴라는 것이 구미를 당기지를 못하는 것이다. 내가 무슨 빵이 먹고 싶은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는 찝찝한 기분으로는 내키지 않아, 언젠가 밖에 나가는 날 빵집 근처에서부터 풍기는 달큰한 빵 냄새에 걸음을 실어 빵집에 들어서리라, 하고 다짐을 괜히 해본다. 그리고선 아이들이 남긴 계란후라이 몇 점과 볶은 브로콜리 몇 개를 집어먹을 뿐이었다.

나의 그 어떤 욕구도 충족되지 못한 채, 바깥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날짜가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르게 해가 뜨고 진다. 그렇게 2주가 지나가고 있다.

나는 한참이나 스카치테이프를 뜯고 뜯더니 눈을 감고 손가락을 내밀으라기에 내민 손가락에 끼워진, 종이로 접은 반지 같은 것을 아이들에게 받고 있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7살 둘째가 엄마 이름을 쓰고 옆에 빨간 하트를 그려서 내미는, 그런 것들을 받고 있다.

평생 가장 힘들다면 힘든 나날들을 보내면서도 그럭저럭 견디고 있다. 내일이 어떤 날이 될지 과하게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신기록을 경신하듯 하는 뉴스도 보지 않은지 며칠 되었다. 이 시간도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며 굳이 위로는 하지 않는다. 견딜만한 나날이라곤 할 수 없겠으나 분명한 것은 이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역병을 피해 애 넷을 데리고 집에 갇혀 있었던 이 시간들을 그리워할 날도 반드시 오겠지. 모두 잠든 밤에 피곤과 피로에 쩐 몸으로 침대에 삐딱하게 앉아 이어폰을 끼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이런 것들을 쓰고 있는 서른여덟의 나를 떠올리는 날이, 반드시 오겠지.

나는 그렇게 오늘 하루도 보내는 중이다.
애 넷과 칩거 2주째, 서른여덟을 살고 있는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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