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의 10분 거리에 신혼집을 얻었었다. 친정집 문을 열면 일을 하시는 부모님 대신에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늘 그 자리에 계셨다. 입덧을 할 때도 그리웠던 것은 외할머니의 손맛이었다.
그렇게 그곳에 계속 계실 줄 알았던 분들은 내가 아이들 낳고 살기 바빠 예전처럼 친정에 잘 가지 못하는 동안 갑작스레 심해진 치매로 친정을 떠나 큰 외삼촌댁으로 가셨다.
친정집에 가면 늘 계셨던 분들을 집안 행사가 있을 때나 뵐 수 있었는데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고 총기가 스러지고 계셨다. 눈에서 빛이 꺼져가는 것이, 예전에 그분들이 더 이상 아닌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애통했다.
치매 증세가 심해지신 두 분들에 대해서, 가족들은 내가출가외인이랍시고 나에게 말을 아꼈다.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나를 걱정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임을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뒤늦게, 빠르게 악화되는 그분들의 상태를 실감했던 것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 요양병원에서 찾아뵈었을 때였다.
이미 병원 중환자실에서 몇 번 고비를 넘기고 손 쓸 수 있는 것이 없어졌을 때 즈음 요양병원으로 두 분의 거처가 옮겨졌다. 요양병원에 도착해서 할머니를 먼저 보러 갔다. 새하얀 병실에 여러 개의 침대에는 할머니들이 누워계셨는데 나는 금세 낯익은 뒷모습을 발견했다.
흰머리가 훨씬 더 많아진 동그란 어깨. 너무나도 그리웠던 저 뒷모습은 평생 잊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친정집 마룻바닥에서 TV를 보며 누워계시던 저 모습. 뒤에서 부르자 천천히 돌아누우며 몸을 일으키시더니 할머니는 우리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며 우셨다. 뭐가 그렇게 서러우셨는지 그 호랑이 같던 양반이 아기처럼 우셨다. 왜 이제야 왔냐는 것이었을까.
할머니를 모시고 위층에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갔다. 그곳은 확실히 병세가 심하신 분들이 계신 곳이었다. 죽음의 냄새가 짙게 나는 것 같았던 그곳. 할아버지를 찾아 다가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할아버지가 눈을 뜨고 우리를 보셨을 때 고통이 가득한 얼굴로 뭐라 말을 하셨다. 입안이 말라서 젖은 거즈를 넣고 계셨어야 했는데, 아프다고 하셨는지 아니면 다른 말씀을 하셨는지 확실히 알 수 없었다. 이불 아래 마르디 마른 다리가, 마른 발이 너무나 차가워서 주무르고 또 주물렀다.
건강하셨을 때, 프로레슬링을 재미지게 보고 앉아 계시는 할아버지더러 농으로 이제 얼른 죽어야 한다고 타박을 그렇게 하셨더랬다. 이제 그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아신 건지, 할머니는 옆에 서서 계속 우셨다.
"할아버지, 또 올게요." 기약 없는 인사라는 걸 알면서도 했다. 그것이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인 줄 알았더라면, 그 말 말고 다른 말을 할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가 계시던 병실에서 나와 직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외할머니와 산책을 했다. 밝은 햇살 아래서 할머니를 보니 눈처럼 하얗게 백발이 성성했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 옅어진 표정. 내가 알던 할머니보다 훨씬 편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애들은 어디에 있어?" 벌써 열 번은 들은 질문이었다. 깊지 못한 내 참을성이라는 것이 이토록 말간 얼굴로 물어오는 말에 슬몃 짜증을 내려고 들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집에, 강서방이 애들 보고 있어."
"강서방 일은 잘 되고?" 할머니의 정신이 하필 맑았는지, 해오는 질문이 반가웠다. 사실 그렇지는 못했지만, 사뭇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네, 잘 돼요. 열심히 하고 있어."
문득, 엄마보다 할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훨씬 많았던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할머니에게는 엄마에게 보다 훨씬 더 솔직할 수 있었다. 그런 나를 할머니도 생각하고 있을까. 이 양반이 아파서, 기억을 잃어서, 치매를 앓고 있어서, 그렇대도 환자 대하듯 하고 싶지 않았다. 환자가 아니라,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우리 할머니였다.
"그 애들을 어떻게 다 키우냐, 힘들어서." 사실 뱃속에 아이 하나가 더 있었지만, 할머니는 내 걱정을 했다. 나는 불현듯, 할머니에게 마냥 솔직해져버리고 싶어 졌다. "할머니, 사는 게 참 힘드네." 할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입술을 깨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울고 싶지는 않아서 언뜻 웃는 얼굴을 하자니 얼굴이 일그러져 못나지는 것만 같았다. 오롯이 할머니 곁에서 크고 자란 나는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염치없게도, 기억이 절반은 사라져 아이 같은 얼굴을 한 할머니에게 그토록 속을 썩인 못난 손녀였던 것을 별안간 용서받고 싶었다.
"할머니, 내가 할머니 말 안 들어서 지금 벌을 받나 봐." 지금 이런 말이 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런데도 계속 할머니를 붙잡고서 뱉어내고 싶었다.
할머니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젊으니까.. 젊으니까 다 괜찮아.. 젊으니까 괜찮아질 거야.. 괜찮아.."
나는 할머니의 깡마른 손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내 등을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요양병원을 떠나면서 할머니에게 또 온다는 인사를 했지만 그 역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튿날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례가 끝나고 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요양병원에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친정엄마와 근처에 사는 이모가 함께 돌보고 계신다.
나는 때로, 할머니가 했던 말이 아른거린다. 그 순간에 할머니의 정신이 온전했던 그렇지 않았던, 엄한 얼굴로 나를 꾸짖고 잔소리했던 그 할머니가 나를 사랑하고 아꼈던 마음은 변하지 않은 채로 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에 고된 하루를 살아내다가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새어 나온다. 아직, 젊으니까 괜찮다고. 그리고 모든 것을 용서했으니, 개의치 말라고.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