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 삶의 우선순위 재정립, 그리고 이직
복귀, 그리고 낯선 익숙함
미국 주재원 기간을 마치고 한국 연구소로 복귀했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익숙하지만 낯설다’는 것이었다.
연구소는 새로 지어졌고, 주변은 완전히 새로운 도시처럼 변해 있었다.
허허벌판이던 곳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회사 분위기와 업무 방식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도, 일하는 방식도 이전보다 훨씬 자율적이고 유연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늘었고, 삶의 리듬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그러나 마음 한편에는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갈망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다시 도전, 두 번째 해외 주재원
이전과는 달리, 해외 주재원의 메리트는 줄어들고
업무 강도 대비 보상이 크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던 시기였다.
더욱이 COVID-19로 인해 해외 파견을 꺼리는 분위기 속에서
그럼에도 나는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PM(프로젝트 매니저) 역할로 중국 주재원의 기회가 생긴 것이다.
부서 이동도 필요했고, 가족을 데리고 해외로 다시 나간다는 건
결코 가볍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회사 내에서는 또 해외로 나간다는 것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도 있었고,
나 역시 수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결국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다시 나를 움직였다.
격리, 낯선 출근, 또 다른 세계
중국 도착 직후, 나는 총 3주간의 격리로 인해 세상과 단절된 채 시간을 보냈다.
그 후에야 첫 출근을 하게 되었고,
이전과 전혀 다른 업무 분위기를 마주했다.
입사 초기 아니 어쩌면 더 과거의 회사 분위기였다.
조직은 수직적이었고, 회식은 잦았으며,
개인이나 가족보다 조직이 우선인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익숙한 제품 개발이 아닌 PM 역할이었다.
업무는 더 기획 중심이었고, 더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조율과 소통이 필요했다.
제품 개발 업무는 명확한 결과물이 존재했지만,
PM의 일은 보이지 않는 과정을 정리하고 끌어가는 일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하면서 조직 내 커뮤니케이션과 신뢰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감했다.
성장을 만든 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시기였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상황이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다.”
이런 마음 가짐은 이직을 결정할 수 있었던 정신적 토대였고,
그 이후의 삶에 중요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다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
결국 나는 이직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 그리고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방향을
조금 더 주체적으로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