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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Aug 03. 2017

같은 듯 다른 꿈을 꾼 두 가수, 유희열과 정재형

라이벌열전(동상이몽) - 2회

라이벌 열전(동상이몽) 2회 - 유희열과 정재형

음흉하지만, 밉지가 않다. 얄미운 듯 낯설지만, 정겨움과 친근함이 더해진다. 음악은 물론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두 뮤지션. 유희열과 정재형은 많은 부분에서 흥미로운 동상이몽을 이루어 나오고 있다. 앞서 연재했던 동상이몽 코너에서 언급되었던 ‘김동률과 이적’과 비슷하게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에서 각자의 꿈을 꾸며 서로를 받쳐주고 있다. 각각 자신의 그룹에서 뮤지션 이상의 가치를 형성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는 유희열과 정재형, 이 두 사람의 동상이몽을 만나 본다. 



유희열과 정재형동상이몽 속의 또 다른 공존

1. 두 사람의 동상이몽이 이루어지고 있는 안테나 뮤직

일반인들은 TV와 라디오 속에서 비춰진 유희열과 정재형, 두 사람이 같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는 점에 부분 놀라움을 표하기도 한다. 공교로울 수 있는 이 놀라움은 오랜 시간동안 내면적으로 공동체를 형성하며 함께 해 나온 두 사람의 관계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이 속한 곳은 안테나 뮤직이라는 곳이다. ‘조그마한 지붕 위에 길게 뻗은 안테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감정, 소리, 꿈과 추억 등 다양한 전파를 주고받을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이러한 의미를 지닌 회사명을 사용해서 음반 사업을 전개하는 곳이 바로 안테나 뮤직이다. 파스텔 톤의 아기자기한 질감이 매력적인 안테나 뮤직의 홈페이지는 이 곳의 사업 스타일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소통의 의미와 음악에 대한 사명에 특히 집중되어 전개되고 있는 안테나 뮤직의 시작은 1997년 토이가 3집 [Present]를 발표하며 설립된 토이뮤직을 전신으로 한다. 

음악에 중심을 잡는 아티스트를 통한 감동적인 감성의 덩어리를 제작하고자 설립된 토이뮤직은 뮤지션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음반 및 매니지먼트 전문 기업으로 성장해 나왔다. 유희열이 이끄는 프로젝트 그룹 토이를 중심으로 시작된 토이뮤직은 음반 제작에 구심점을 잡은 이후 신인 발굴과 광고,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필드에서 노하우를 쌓아 나오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디지털 싱글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50여 장의 앨범을 발표해 나오고 있는 안테나 뮤직은 토이 4집 [A Night In Seoul]과 토이의 라이브 앨범인 [Toy Live]를 연이어 제작했고, 김연우와 루시드 폴을 새롭게 영입해서 각각 2집 [연인]과 [오 사랑]을 발표하며 품격 높은 대중음악의 발굴과 제작에 중심을 잡아 나왔다. 

2007년 디어 클라우드([Dear Cloud)의 데뷔작인 [Dear Cloud]를 발표한 토이뮤직은 이 시점을 기해서 현재의 안테나 뮤직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박새별과 정재형, 페퍼톤스, 권진아 등의 앨범을 순차적으로 제작해 나오고 있다. 안테나 뮤직과 관련해서 한 가지 이채로운 사실은 소속 가수들의 평균 학력에 있다. 서울대 작곡과 출신의 유희열과 서울대 화학공학 박사인 루스드폴, 그리고 한양대 작곡과 출신의 정재형과 카이스트 출신의 페퍼톤스, 연세대 출신의 박새별 등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또한 안테나 뮤직은 경쟁기업 가운데 대기업에 속하는 YG와 JYP와 함께 SBS 신인 발굴 프로그램인 ‘K팝스타’를 통해 차세대 신인을 발굴하는 오디션에도 참여해 나오고 있는 건실한 기업이다. 흥미로운 공연 기획도 꾸준하게 내놓고 있는 안테나 뮤직은 2010년 ‘대실망쇼’를 통해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이 모두 출연해서 합동공연을 진행했으며, 기획공연 ‘안테나 뮤직 워리어스’를 개최하며 일률적인 레이블 파티에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기도 했다.



2. 객원 가수와 지인과의 음악적 소통

스트링을 사용한 편곡과 어쿠스틱 발라드, 그리고 섬세한 일상의 감수성을 노래하는 유희열과 피아노부터 일렉트로닉 장르에 이르기까지 범위가 큰 색깔의 음악을 지향하는 정재형. 두 사람의 공통점은 각기 토이와 베이시스 시절에 객원 가수를 초빙해서 앨범 제작을 이뤘다는 점이다. 물론 두 사람 모두 데뷔는 조직을 이룬 멤버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홀로서기를 통해 어렵게 결정한 어려움도 부분 있었다. 

유희열은 토이의 1집에서 조규찬, 장필순, 김정호, 박상균 등 하나뮤직의 제작 구조를 덧씌운 시스템의 제작을 이뤘다. 1989년 제 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무지개’를 통해 금상을 수상했던 조규찬은 토이의 1집 수록곡 ‘내 마음속에’부터 3집 ‘넌 어떠니?’ 등에 참여하며 유희열과 토이가 안정적인 위치에 오를 때까지 동반자적 행보를 보여줬다. 또한 토이의 5집 [Fermata]에서는 조트리오의 멤버로 참여해서 ‘Complex’에서 함께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토이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있는 객원 가수는 같은 가요제 출신의 후배 가수이기도 한 김연우를 꼽을 수 있다. 

그는 2집 [어른들의 동화]에서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등 4곡에서 열창을 보여줬고, 4집 [A Night In Seoul]과 5집 [Fermata]에서는 ‘거짓말같은 시간’ 등 4곡의 트랙에 참여했다. 그런 김연우는 2004년 토이뮤직에서 6년만에 자신의 2집 앨범 [연인]을 발표했고, 이 앨범을 통해 김연우는 솔로 가수로써 확실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한편 세 사람은 모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며, 조규찬, 김연우, 유희열 모두 1971년 동년배이기도 하다. 순차적으로 조규찬이 유희열을, 그리고 유희열이 김연우를 받쳐줌으로써 이들은 각자 뮤지션으로써 배가된 위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정재형은 정통 클래식에 집중하고 있던 자신을 설득해서 대중가요계에 뛰어들게 한 쌍둥이 자매를 미워할 수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이미 대중가수로써 인기와 적당한 영역을 차지했던 정재형은 김아연, 김연빈 두 멤버가 떠난 뒤 큰 고민없이 베이시스의 3집 앨범에 대한 컨셉 작업에 들어갔다. 자기 자신의 가창력이면 일단 충분하다고 판단한 정재형은 원맨 프로젝트 형식으로 앨범을 제작하되, 두 멤버의 빈 자리는 평소 친분이 깊은 가수들을 초빙해서 채우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결국 이소라와 이기찬, 김진추가 베이시스의 3집 앨범에서 완성도 높은 가창을 함께 해줬다. 정재형의 솔로 활동에는 특별한 객원 가수가 없이 부분적인 참여가 이루어졌었다. 

1집 [기대]는 노영심과 심현보, 이적, 김동률이 작사가로써 정재형이 작곡한 곡에 노랫말을 입혔으며, 2집 [두 번째 울림]에서도 역시 이적과 심현보가 작사를 담당하고 있다. 이외에 2집 앨범에는 BK와 강호정, 이성훈 등 프로그래밍으로 익히 알려진 뮤지션이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정재형이 향후 참여하게 되는 신인가수 린애가 ‘서로 다른 길’에서 듀엣으로 함께 했다. 정재형은 3집 [For Jacqueline]에서 엄정화의 앨범에 수록했던 곡을 프랑스어로 새롭게 불렀으며, 윤상, 김동률 등의 히트곡에서 주옥같은 작시를 보여준 박창학을 초빙하기도 했다. 또한 모델 장윤주와 이효리, 정인 등이 듀엣으로 정재형 음악의 변화에 함께 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객원 가수를 활용하며 활동해 나왔던 유희열과 정재형, 두 사람이 반대로 객원 멤버로써 함께 참여한 작품이 있다. 바로 유세훈과 뮤지의 프로젝트 그룹인 UV의 2011년 싱글 ‘Who Am I’이다. 비틀즈(Beatles)를 연상시키는 이 곡의 전체 컨셉에서 두 사람은 각각 베이스와 기타를 담당했으며, 복고풍 패션과 이미지 연출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두 사람의 유머러스한 음악적 센스마저 돋보였던 이 조합은 듣고 보는 이를 유쾌하게 이끌었으며, 당분간 보기 힘든 패러디로 남을 듯하다. 



3. 두 사람이 참여한 작편곡과 음악적 소통

유희열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선배 뮤지션들의 음반에 작곡자로 참여하며 음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가 정식으로 데뷔를 이룬 ‘유재하 경연대회’는 어쩌면 새로운 유재하의 재림을 위한 준비된 단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주력 활동인 토이 외에도, 윤종신, 윤상 등과 함께 가요계의 명품 작곡작로서 명성을 날리며 감성 세대를 이끄는 대표적인 프로듀서로도 확실하게 자리매김 해왔다. 무엇보다 유희열은 자신의 전공을 살린 전문적인 이론과 특유의 감성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데 탁월한 작. 편곡자이자 프로듀서이다. 


유희열은 1994년부터 1997년까지 토이 활동을 벌여 나오면서 작곡자와 프로듀서로 특히 각광을 얻어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이승환의 4집 앨범 [Human]에서 ‘부기우기’와 ‘변해가는 그대’를 선사했고, 이승환의 5집 앨범 [Cycle]에서는 ‘백일동안’, ‘붉은 낙타’, ‘가족’ 등 9개의 노래에 작곡 및 편곡자로 참여했다. 

또한 015B의 객원 가수였던 이장우가 ‘훈련소로 가는 길’을 히트시킨 데뷔 음반 [이제, 그녀는 이 도시 어디에도 살지 않는다]에 참여했고, 이 인연으로 토이의 2집 앨범에 이장우는 객원가수로 참여하게 되었다. 유희열의 음악적 감각이 빛을 발한 것은 윤종신의 5집 [愚]와 6집 [육년], 그리고 주춤했던 이문세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던 10집 앨범 [花舞]의 타이틀곡인 ‘조조할인’을 통해서였다. 

토이의 데뷔는 엄밀히 하나뮤직에서 옴니버스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했던 [하나 옴니버스 3집]에 수록한 ‘내 마음 속에’를 통해서였다. 유희열은 토이의 앨범에 특히 많은 참여를 했던 EOS 출신 김형중과 ‘유재하 경연대회’ 출신인 김연우에게 음악적 화답을 제대로 이루어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먼저 김형중의 데뷔 앨범에서 타이틀곡 ‘그랬나봐’와 ‘미몽’을 선사한 유희열은 그 스스로 ‘유희열 음악과 가장 어울리는 보컬리스트’였던 김형중이 솔로 가수로 성공하는데 큰 일조를 담당했다. 그리고 토이 2집부터 객원 가수로 꾸준하게 활동하며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 ‘거짓말 같은 시간’ 등 토이를 대표하는 발라드에서 뛰어난 가창을 보여줬던 김연우가 6년 만에 발표한 2집을 토이 뮤직에서 직접 제작하며 뜨거운 우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중고 신인과의 작업적인 측면에서 유희열은 이승환과 노영심의 색깔이 많이 드리워져있던 이소은의 3집 앨범에서 ‘키친’과 ‘부탁’을 선사하며 다소 무거웠던 이소은의 색감을 경쾌한 걸음으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한편 유희열은 6집 앨범 당시 예상 밖의 행보를 보여줬다. 활동 영역이 메인 스트림과 다소 멀었던 싱어 송 라이터이자 인디 밴드 위퍼(Weeper) 출신의 이지형과 함께 타이틀곡 ‘뜨거운 안녕’을 공동작업한 것. 토이 객원 보컬 참여라는 큰 작업에 메인 스트림에서는 신인급이라 할 만한 이지형과 조합을 이뤘다는 점은 ‘늘 음악계 전반을 관찰하고 있는’ 유희열의 폭넓은 시야와 열정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 스스로 레이블에 관여하고 있고, ‘K팝스타’와 같은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유희열은 음반산업의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에도 자신의 능력을 적절하게 기여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라디오 DJ 당시부터 실력은 있으나 활동에 제약을 받고 홍보가 부족한 신인들의 음악을 소개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안테나 뮤직과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거나 중심을 잡아줄 신인들에 거는 기대는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윤종신과는 사뭇 다를 것으로 기대된다. 두 가수의 노선이 음악적인 측면은 물론 제작적인 측면에서 공조를 이룰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재형도 유희열과 비슷하게 신인급보다는 중고 신인들과의 작업을 주로 행해 나왔다. 신인급으로 정재형은 린애의 1집 [이별후]와 이루마, 김솔봉 등이 함께 참여한 MIK Ensemble의 1집 [Mik Ensemble]에서 각각 ‘서로 다른 길’과 ‘L'Etna’ 등을 선사한 적이 있다.  1995년 윤일상과 오태호, 박선주 등 대표적인 작곡가들이 참여했던 서지원의 2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내 눈물 모아’를 선사했던 정재형은 1997년부터 1998년까지 많은 곡을 작곡해서 여러 가수들에게 선사했다. 박승화의 2집 [3년 동안의 꿈]에 ‘훗날 나처럼’과 변진섭의 7집 [Again]에 ‘364’ 등을 작곡했고, 특이하게 ‘제 19회 MBC 강변가요제’의 대상곡인 ‘나와 같은 눈물을 흘릴거야’를 편곡하기도 했다. 

유재하를 추모하는 앨범 [1987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에서는 ‘우리들의 사랑’을 노래했던 정재형은 이후 김원준 7집 [Self Destruction]과 엄정화 4집 [4th Invitation], 이문세 11집 [Sometimes] 등에 자신의 곡을 선사하며 번외 활동에 잦은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이소라, 엄정화와의 작업을 각각 두 차례 진행하며 중성적인 감성이 잘 전달되는 음악을 작업하기도 했다. UV의 싱글 ‘Who Am I]에 유희열과 함께 참여했던 정재형은 최근 아이유의 2집 [Last Fantasy] 앨범에 ’L'amant’를 수록했다. 



5. ‘난 형이 창피해그래서 좋아해

과거 유희열이 진행하던 <스케치북>에 진행자와 게스트로 출연한 두 사람은 ‘서로의 가창 실력이 더 낫다’며 끝내 ‘노래 배틀’을 연출한 바 있다. 당시 유희열은 이적의 ‘Rain’을, 정재형은 혜은이의 ‘열정’을 불렀다. 유희열은 또한 ‘노래 못하는 가수들의 공연’에 정재형을 끌어 들인 일도 있다.

 ‘초음파’와 ‘조르기 하이톤’이라 자칭하는 두 사람의 가창 실력보다 그 당시의 방송과 이벤트가 대중들에게 흥미와 재미를 전달했던 점은 유희열과 정재형이라는 두 가수의 미묘한 감정선이었다. 오래전부터 노출된 너무나 정직하게 오가는 두 사람의 대화는 유희열과 정재형 두 가수의 친숙함의 일부일 뿐이다. 이들의 허물없는 관계는 지난 4월 <K팝스타3>에서 두 사람이 TOP3 멤버들을 유혹하기 위해 나누던 대화에서도 여지없이 발견된다. YG와 JYP를 “YG? 그 회사는 식당으로 수익을 올린다.”, “JYP? 그 사무실은 조용필 선배의 건물을 박진영이 임대해서 쓰고 있는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것. 

유희열과 정재형은 참으로 유쾌한 친구이자, 라이벌이며, 또한 비즈니스 파트너이기도 하다. 유희열은 KBS의 <라디오 천국>에서 매주 월요일 ‘La Vie En Rose’ 코너에 정재형을 초대해서 함께 진행을 한 적이 있다. 이 코너에서 정재형은 불어를 사용하면서 자신을 조금 격상시킬 수 있는 매순간에도 말을 더듬고 버벅거리는 다소 우스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상대가 유희열이었기에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면에서 그만큼 유희열의 진행이 상당히 포용력이 높다는 점도 시사한다. 정재형의 그러한 행동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큰 포인트는 누구보다 돋보이고 높은 레벨에 위치한 정재형이 ‘자신 스스로를 굳이 높일 필요가 없다’는 겸손함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어리숙하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런 사람, 그게 바로 정재형을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이다. 그 당시 유희열은 정재형을 두고 ‘박정현, 김연아와 더불어 대한민국 3대 요정인 음악요정’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유희열 역시 정재형을 낮추되 높이고, 높이되 낮추며 정재형이라는 브랜드가 현재에 이르도록 적잖은 시도와 노력을 보여줬다. 정재형의 절친한 가수인 이적은 “이기주의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정재형일 것”이라며 역시 스스럼없는 표현으로 정재형을 소개하기도 했다. 스펙을 놓고 봤을 때 굉장히 다가가기 힘든 위치인 정재형은 본인 스스로 고상한 캐릭터가 아닌 대중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편안한 가수이자, 방송인으로 기억되고자 노력하는 인물이다. 


물론 정재형 역시 MBC의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당시 애매모호한 웃음과 행동 속에서 “유희열 나부랭이”라는 표현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가감없이 보여준 적도 있다. 유희열과 정재형, 음악 선후배 관계 이전에 비즈니스로 엮여있는 두 사람의 관계. 무엇보다 부러울 정도로 따스한 두 사람의 관계는 2011년 레이블 파티 개념으로 진행된 <안테나 뮤직 워리어스> 공연에서 유희열이 정재형에게 공개적으로 밝힌 “난 형이 창피해. 그래서 좋아해”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겠다. 

이에 대한 화답일까. 정재형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서로를 냉정하게 비평해서 음악에 영향을 주는 것이 내가 즈음에 음악을 하는 원동력이다. 유희열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게 많아서 좋다.”고 말함으로써 두 사람의 깊고 푸른 동상이몽을 피력하기도 했다. 



6. ‘마성의 유희열이 토이와 함께 걸어온 길

프로젝트 그룹 토이. 많은 여성들은 이들의 음악에 환호했고, 그에 못잖게 남성들 역시 그녀들과 함께 토이의 음악에 빠져 들었다. 토이의 음악은 유희열 특유의 깊고 넓은 감성의 음악과 각 앨범마다 변화를 주며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토이는 원맨 밴드 혹은 프로젝트 밴드로서 다양한 장르에서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객원 보컬을 기용해서 음악이 완성되어 왔다는 점에서 여타 그룹이나, 뮤지션들보다 좋은 포지션을 차지할 수 있었다. 1994년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조용한 행보를 통해 인지도를 쌓아온 싱어 송 라이터 유희열의 프로젝트 토이의 등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희열. 그가 전개한 음반 제작방식은 015B의 그것과 비슷했으며, 그가 선사한 음악은 유재하와 윤상의 도시적이고, 스타일리쉬한 작풍과 사운드의 넓은 공명이 고르게 묻어나는 특징을 지녔다. 유희열. 그가 걸어온 음악에 대해 소개한다. 

경복고등학교의 스쿨밴드 푸른돛의 기타리스트였던 유희열은 1989년 고등학생 시절 김장훈 1집 앨범에 ‘햇빛 비추는 날’을 작곡해서 선사하며 음악계에 첫 등장했다. 이후 유희열은 서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했고 음악 활동으로 인해 오랜 휴학기를 거치다가 14년만에 졸업하기도 했다. 유희열이 가수로서 본격적인 발을 딛게 된 것은 1992년 ‘제 4회 유재하 가요제’에 출품했던 ‘달빛의 노래’가 대상을 수상하면서 부터이다. 이후 서울음반과 하나음악 등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윤정오와 함께 토이를 결성하며 정식 데뷔했다. 그룹명 토이는 유희열과 윤정오의 첫 영문 이니셜인 Y를 따서 ‘Two+Y’라는 공식에서 탄생되었다. 1994년 데뷔 앨범 [내 마음속에]를 발표한 토이는 이 앨범에서 객원 싱어를 영입해서 각 수록곡에 맞는 보컬들이 모든 노래를 소화하도록 제작했다. 이는 이후에도 토이 앨범 제작의 가장 큰 틀이기도 했다. 

토이의 데뷔 앨범은 조규찬, 박상균, 장필순, 김정호 등이 가창자로 참여했고, 이정식과 조동익, 손진태, 이병우, 김광민 등 최고 기량을 지닌 세션진들이 함께 했다. 1집 발표 후 유희열은 군에 입대를 했고, 윤정오는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유희열은 제대 후 자신이 중심이 된 솔로 프로젝트 형식으로 토이를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 결과물로 1996년 2집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발표했다. 

섬세하면서도 센스있는 재킷이 돋보인 이 앨범은 제작 당시부터 많은 음악 관계자들이 유희열이라는 브랜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단순하지만 화려하게 흐르는 코드 진행, 그리고 간결한 멜로디, 영화를 연상시키는 드라마틱한 곡조의 흐름은 새로운 대중음악의 아이콘으로 유희열을 단연 돋보이게 만들었다. 객원 보컬 김연우가 부른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의 히트는 대중과도 본격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클래식 사운드를 기반으로 현악 파트의 편곡이 돋보였던 3집 [Present]는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선물을 준비한 남자의 곁을 결국 떠나고 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치 순수한 영화를 위한 사운드트랙을 접하는 듯 컨셉과 사운드의 질감이 빼어나게 녹아내려있는 앨범이 바로 토이의 3집 앨범이다. 더 클래식의 박용준과 지누, 이재형, 신해철, 이승환, 그리고 여전히 조규찬이 함께 가창을 담고 있으며, 박영용, 함춘호, 김원용, 신현권, 이태윤, 정원영 등 새롭게 구성된 세션진이 사운드의 색채를 다듬어냈다. 

3집과 4집 사이 유희열은 김현철의 6집 앨범 중 ‘이게 바로 나에요‘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면서 타가수와의 공동 작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기존의 작법은 유지하되 사운드의 색채를 클래시컬 라인에서 일렉트로닉 시스템으로 전환한 흔적이 강한 4집 [A Night In Seoul]이 1999년 발표되며, 유희열은 단순히 감성에 호소하는 팝발라드 가수가 아닌 뉴웨이브와 재즈, 테크노 등 다양한 음악에도 가능성이 풍부한 뮤지션으로 주목을 끌었다. 여기에는 당시 유희열이 한 인터뷰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보니, 몰랐고 놓쳤던 좋은 음악들을 많이 접하게 되었다.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며 계기가 되었던 음악들이 너무 많았다.”고 밝힌 것처럼 토이와 유희열만의 새로운 음악의 발견을 위해 노력한 흔적이 강하다. 그럼에도 전형적인 토이 스타일의 넘버 ‘여전히 아름다운지’는 서정적인 멜로디에 유려하게 묻어난 김연우의 보컬이 돋보였고, ‘혼자 있는 시간’은 어쿠스틱한 사운드 칼러로 이전까지 전달되던 토이 고유의 편안한 흐름을 여전히 보여줬다. 

자신의 음악적 변화에 대한 기세를 몰아 2001년 발표된 5집 [Fermata]는 토이와 유희열 음악의 새로움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 앨범이다. 브라질 민속 리듬 삼바와 율동하듯 풍성한 멜로디 스타일이 뒤섞인 이 앨범은 이적과 성시경 등이 참여해서 음악적 공조가 돈독하게 형성되었다. 그리고 공동 작업에 의한 반향은 이적과 성시경의 향후 음악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앞만 보며 달리던 유희열은 이 당시를 기해서 무기력함을 잠시 보였다. 

유학과 휴식 등을 고민하면서 결혼을 했고, 사업적인 부분에서도 안테나뮤직으로의 상호 변경을 하게 되면서 유희열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6년 만에 토이는 1997년 6집 [Thank You]를 발표한다. 앨범의 타이틀처럼 6집 앨범은 길고 긴 시간 속에서 다시 돌아온 토이를 맞이하는 팬들에게 전하는 안도와 고마움이 담겨 있으며, 음악적으로 다양한 소리의 조합을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 그득하다. 이는 80분의 러닝 타임을 지녔던 전작을 이어 73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지닌 전체 수록곡의 흐름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유희열은 6집 앨범을 통해 제6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상’과 ‘최우수 팝노래상’을 수상했다. 이후 유희열은 델리 스파이스(Deli Spice)의 김민규의 프로젝트인 스위트피(Sweetpea)에 ‘봉인’을 선사했고, 2008년 5곡의 연주곡과 3곡의 노래가 담긴 자신의 이름을 건 EP 앨범 [여름날]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유희열의 피아노와 기타, 그리고 현악기로만 구성된 사운드가 특징이다. 유희열 스스로 초기 토이의 감수성과 미세한 사운드로의 회귀를 담고자 노력했다는 이 앨범은 토이 시절의 매력과 유희열의 진화된 음악이 교차된 작품으로 기록되고 있다. 2014년 발표된 [Da Capo]에 이르기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가운데 유희열은 여러 방송 프로그램 활동도 병행해 나오고 있다. 



7. ‘음악의 신’ 정재형이 베이시스와 자신을 향해 걸어온 길

클래식과 파리, 예술과 예능, 그리고 공활함. 정재형의 허세는 가장 대중적인 세상에서 예술을 행하는 뮤지션의 진솔한 마음이다. 그럼에도 정재형의 이미지는 순정만화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그를 연상할 때 우리는 말쑥한 세미 정장에 늘 그랜드 피아노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가느다란 손끝을 가지런하게 튕기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듯 정재형이라는 뮤지션의 느낌은 정갈함이었다. 

1995년 혼성 듀오 베이시스를 통해서 데뷔를 이룬 정재형은 음악적으로 가지런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뮤지션이다. 댄스와 비트 위주의 대중가요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 베이시스의 음악은 정통 클래식과 발라드의 조화, 그리고 애절한 가사를 토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베이시스의 3집 이후부터 사실상 솔로 활동을 진행해 나오고 있는 정재형 음악의 특징은 우울함과 처절함이 함께 배이면서도 청자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감상 포인트를 지닌다는 점이다. 이는 빌 에반스(Bill Evans)와 드뷔시(Debussy) 등에 영향받은 재즈와 클래식의 단아한 구심에 기인한다. 정재형. 그가 걸어온 음악에 대해 소개한다. 

유재하에 큰 영향을 받아서 음악을 시작한 유희열과 달리 정재형은 어릴 적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에 반해서 피아노 학원을 다닌 계기로 음악을 시작했다. 정재형의 센스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듯 하다. 어느 날 어린 정재형에게 피아노 선생님이 칭찬을 했고, 짝사랑하던 여자 아이가 질투를 해서 고자질을 했다고 한다. 당시 정재형은 “아.. 예쁜 사람이 늘 아름다운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정재형의 거침없고 살뜰한 마음은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이미 시작된 게 아닌가 싶다.  

한양대 작곡과를 다니던 도중 관현악을 전공하는 김아연, 김연빈 쌍둥이 자매가 ‘우리 대중음악을 함께 해 보는 거 어때?’라는 제안으로 베이시스(Basis)를 결성하게 된다. 정통 클래식을 전공하던 정재형은 대중음악을 하겠다는 이유로 전공 교수들이 대책 회의를 열 정도도 전공 수업에 열심이었다고 전해진다. 1995년 발표된 베이시스의 데뷔 앨범은 굵은 여성 보컬과 가녀린 남성 보컬이라는 특이한 구성으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슬픈 노래는 스무 살에 나온다’고 생각하며 정재형이 작곡한 ‘내가 날 버린 이유’가 크게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연주 실력이 당시 그 어느 대중가수보다 뛰어났던 이들의 인기는 라이브 무대에서 더 각광을 얻어냈다. 이 앨범에서 정재형은 수록곡 10곡 가운데 6곡에 작곡으로 참여하며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쌓는데 성공했다. 이 당시에 정재형의 흥미로운 행동이 이슈가 되었었는데, 갑작스레 머리를 염색하고 터프한 느낌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자신은 클래식을 기반으로 한 대중가요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서 클래시컬한 느낌을 받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타이틀곡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 시켜줘’가 연이은 히트를 기록한 2집 [The Unbalance]는 2002년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가 히트를 치면서 제목만 같다는 이유로 다시 한 번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후 베이시스의 시작을 도모했던 김아연과 김연빈은 유학을 떠났고, 평소 친분이 있던 가수들을 초대해서 3집을 완성했다. 그런 이유로 3집의 타이틀은 솔직담백한 정재형의 성품이 묻어나는 [Basis 3 Project-Friends]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소라와 이기찬, 성악가 김진추를 객원가수로 녹음을 진행했고, 40인조 오케스트라를 통해 풍부한 스트링 사운드를 일렉 사운드와 연결시켰다. 

정재형 자신이 프로듀서를 담당한 이 앨범이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은 영화 주제가인 ‘마리아와 여인숙’를 비롯한 4곡의 인트트루멘탈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리아와 여인숙’을 모니터링하던 정재형은 “내 자신이 만든 음악이 영화와 어우러지는데, 내 음악의 빈 틈을 많이 느껴졌다.”고 판단하며 잠시 슬럼프에 빠졌다. 결국 1999년 솔로 데뷔 앨범 [기대]를 발매한 이후 정재형은 파리 고등사범 음악원에 영화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정재형은 솔로 앨범에 수록된 ‘그리고 아무말도 없었죠’와 ‘체념’에서 묻어나듯이 우울하고, 비장한 감성이 극에 차 있었다. 

이후 사색과 관념이 가득 고인 ‘진주 귀걸이를 한 처녀’와 ‘나같은 사람이라면’ 등이 수록된 2집 앨범 [두 번째 울림]을 발표한 정재형은 이병헌과 이미연이 주연한 영화 <중독>의 음악을 담당했다. 그리고 베이시스 활동 당시부터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던 엄정화가 주연했던 영화 <Mr. 로빈 꼬시기>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고, 엄정화의 [Self Control] 앨범에 참여하기도 했다. 2008년 여행 에세이 <정재형의 Paris Talk>를 발간한 직후 정재형은 6년만의 앨범이자, 고급스러운 일렉트로닉 팝이 담긴 3집 [For Jacqueline]와 피아노 소품집 [프롬나드, 느리게 걷다]와 4집 [Le Petit Piano]를 순차적으로 발표했다. 영화음악에도 꾸준하게 참여하고 있는 정재형은 2010년 <째째한 로맨스> 이후 4년 만에 영화 <두근두근 내인생>의 음악감독을 맡으며 ‘음악의 신’으로써 다시 한 번 호평을 얻어내고 있다. 



은근한 유쾌함이 솔솔 묻어나는 두 남자, 유희열과 정재형. 그리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감각의 심연과 음악성을 지닌 두 뮤지션. 두 사람의 현재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행복과 기쁨을 전달받고 있다. 두 사람의 음악이 다시 다가오고 있는 지금, 우리는 유희열과 정재형이라는 동상이몽을 통해 더 큰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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