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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Feb 21. 2018

호랑이의 눈동자처럼 굽이치며 감동을 전하는 음악

기타리스트 박석주의 주스 프로젝트 2집 [아리랑]

한국적인 성음과 새로운 음의 진화를 이룬 주스 프로젝트(Ju’s Project)의 [아리랑].

호랑이의 눈동자처럼 굽이치며 감동을 전하는 음악들로 가득 채워진 작품.    

 

지금 마주하는 음반은 여러 숨의 조각들이 하나로 모여 완성된 주스 프로젝트의 2집 앨범 [아리랑]이다. 2015년 가을 박석주를 중심으로 첫 앨범 [Imagine]을 발표했던 주스 프로젝트가 3년여의 시간이 지난 2018년 3월, 2집 [아리랑]을 들고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이번 앨범에는 박석주 본인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탐닉해왔던 ‘대자연(Mother Nature)’을 주제로 총 8곡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곡 여러 곳에서 국악기를 사용하며 정서적인 표현법에 집중했으며, 한국적인 성음과 새로운 음의 진화를 위한 고민도 두루 담아냈다.     

박석주는 남원을 대표하는 뮤지션이자, 음악감독이다. 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살아 온 자신 삶의 이미지를 고향의 정서와 함께 담아내 보고자 주스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렇듯 음악의 가치와 본질에 누구보다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영하는 박석주의 혼이 실린 밴드가 바로 주스 프로젝트이다. 이번 앨범의 또 다른 주제는 ‘내가 사는 곳의 사랑이야기’이다. 이런 이유로 타이틀 ‘아리랑’은 고유의 의미 외에 ‘我里娘’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아리랑’의 타이포그라피가 선명한 이미지로 형성되어 있는 재킷은 지난 앨범을 이어서 강찬모 화백의 작품 ‘한라의 사랑’이 함께 하고 있다. ‘히말라야 작가’로 통하는 강찬모 화백은 자연과의 성스러운 교감을 통해 인간의 내면과 우주의 신비를 고요와 경건함으로 풀어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 점은 박석주와 주스 프로젝트가 지닌 음악적 정체성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음악에 바탕을 두고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음의 기조가 범람하는 주스 프로젝트의 [아리랑]은 전작 [Imagine] 이상의 미학이 드넓게 배여 있다.     


지난 앨범 이후 박석주는 매우 분주한 활동을 전개해 나왔다. 홍신자의 소리 ‘아라리요’와 ‘여우락’, ‘별소릴 다하네’ 등에서 연주를 담당했고, 장편독립영화 ‘이수아’와 ‘비명자들’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활약했다. 또한 1937년 빅터레코드에서 발매된 [춘향전]을 국립민속국악원에서 재해석해서 복원한 앨범 [판에 박은 소리-Victor춘향]의 녹음에도 참여했다. 

국악과 크로스오버, 영화음악 등 무수히 많은 영역에서 박석주는 주스 프로젝트의 2집을 위한 감성을 꾸준하게 끌어 올린 셈이다. 박석주는 음악에 흐르는 선율을 형상화시키는 부분에 큰 맥을 짚고 작업을 이루는 뮤지션이다. 때문에 주스 프로젝트의 [아리랑]은 여러 일정과 상황 속에서 수록곡에 대한 편곡과 연주방식에 많은 공을 들여 완성될 수 있었다.     

[아리랑]은 1집 [Imagine]을 녹음했던 소울레코딩스튜디오에서 전남도립대 이철수 교수와의 깊은 교감 속에서 작업이 진행되었다. 작곡과 기타를 담당한 박석주 외에 서연호(편곡, 채보), 임성애(대금), 이민영(가야금), 한소라(바이올린), 이규민(첼로), 서현경(클라리넷), 구국회(건반), 오영규(베이스), 이여송(타악), 박인열(드럼),김대일(노래) 라인업으로 풍성하게 실연이 이루어졌다. 특히 밴드 ATLAT순수의 오영규, 이철수는 지난 앨범에 이어 다시 한 번 주스 프로젝트의 중요한 음의 한 축을 담당했다.    

 

[아리랑]은 지난 작품 [Imagine]을 잇는 연작의 개념이 강하다. 차가운 듯 따스한 온기를 품은 톤이 전체 트랙에 가득하다. 여전히 뛰어난 레코딩 상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오디오 마니아다운 박석주의 디테일이 곳곳에서 빛난다. 또한 미세한 현의 울림과 그 공간을 헤집는 작은 비트와 여러 소리의 번복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번 앨범에는 10분대의 러닝타임을 지닌 ‘나를 찾아서’를 비롯해서 6분대 이상의 곡이 4곡이나 수록되어 있다. 퓨전·컨템포러리 레이블 ECM과 비슷한 톤을 지닌 듯 상이한 주스 프로젝트의 [아리랑]은 차후 세계적인 레이블을 통해 전 세계인과 함께 호흡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봄직하다. 수록곡을 살펴보자.     


1. 단비(Sweet Rain)

35년 전 기타를 처음 만지기 시작했던 박석주가 2000년대를 앞둔 시기에 미완으로 남겨뒀던 남다른 의미를 지닌 곡이다. 봄비에 대한 반가운 마음이 기타와 가야금의 유려한 프레이즈로 화사하게 번지고 있다.      

2. 퍼스트 모멘츠(First Moments)

2016년 6월 음악감독과 연주자로 참여했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메인테마를 바탕으로 완성된 곡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과 설렘이 중저음의 현사운드로 유연하게 표현되어졌다. 또한 후반부를 수놓는 타악과 일렉트릭 기타의 어울림은 순도 높은 명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3. 한량 춤추다(Han Ryang Dance)

조선시대 관직이 없이 한가롭게 사는 사람을 지칭했던 한량들의 삶을 비틀고, 그들의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풍자한 기타 독주곡이다. 박석주가 지닌 다양한 테크닉과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4. 바람의 그림자(The shadow of the wind)

변화무쌍한 인간의 삶은 ‘단 한 번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성찰 속에서 완성된 곡이다. 하나의 곡속에 두 개의 낯을 품고 있는 ‘바람의 그림자’는 톤의 정갈함 역시 우수한 트랙이다.      

5. 섬진강(Seom Jin River)

가을을 지나 겨울을 맞이하던 섬진강에서 강줄기를 타고 전해지는 자연의 깊은 메아리에 영감을 받아서 완성된 곡이다. 수록곡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성격을 지닌 트랙으로 김수철과 기타로(Kitaro) 등이 전개했던 다채로운 민속음악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6. 아디오스(Adios)

멜로디와 기타의 리듬을 연하게 채색했던 1집의 기품이 연장되어 실린 곡이다. 작별의 순간에 나누는 인사는 상대가 늘 아름답게 번져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별의 순간보다 더 긴 여운을 지닌 섬세함까지 전달되는 곡이다.     

7. 나를 찾아서(Finding myself)

겨울산을 오른 박석주가 긴 겨울밤을 지새우며 완성시킨 곡이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존감은 늘 내면에 있고 그 여정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이 실린 이 곡은 앨범 내에서 유일하게 보컬이 가미된 트랙이다. 크게 3단계로 구성된 ‘나를 찾아서’는 뜨거운 눈물을 당장에라도 쏟아낼 듯 한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원 김대일의 가창이 빛나는 멋진 작품이다.       

8. 아리랑(Arirang)

‘나를 찾아서’와 함께 가장 긴 러닝타임으로 구성된 ‘아리랑’은 이번 앨범의 주제는 물론 주스 프로젝트의 현재와 다음까지 기대할 수 있는 명연을 담고 있다. 1집의 엔딩곡이었던 ‘산조’의 기운을 덧씌운 ‘아리랑’은 국악에 대한 박석주의 남다른 신념을 품고 있으며, 고향 남원에 대한 사랑과 그 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빼어난 연주로 그려냈다.     


커다란 격조가 없음에도 호랑이의 눈동자처럼 굽이치며 감동을 전하는 주스 프로젝트의 [아리랑]은 우리와 또 다른 우리에게 전해야 할 소중하고 의미있는 작품이다. 많은 분들이 이 음반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또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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