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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ul 29. 2019

그 때, 우리, 이 음악 1

An Episode..

그 때, 우리 이 음악 Vol.1

이 시리즈는 1980년대 전후의 음악을 사랑했던 우리에게는 추억을, 2000년대 전후 시절의 음악에 열광하는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억을 전하고자 작성되었다.  <그 때, 우리, 이 음악> 시리즈를 통해 시대를 상징했던 여러 뮤지션과 대표적인 음악들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Who Is..

전라남도 목포 출신으로 순천에서 성장한 김경호는 지역 가요제에 참가해서 노래를 부르던 형에게 영향을 받아서 가수의 길을 선택했다. 순천효천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9년 <KBS청소년창작가요제>에 「꿈 그리고 사랑」으로 출전해서 동상을 수상하며 앨범 데뷔했다. 이 노래는 당시 사회적으로 이슈를 모으던 교원노조 사태를 보며 만들었던 곡으로 고3 김경호의 앳된 목소리와 안정된 가창 실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서울예술신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한 김경호는 1991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해서 「긴 이별」로 동상을 수상하며 음반 제작자들의 주목을 이끌었다.


An Episode..

한국대중음악사에는 데뷔 당시의 실력과 열정에 비해 앨범 데뷔가 늦어지거나, 데뷔 앨범이 뒤늦게 히트를 기록한 사례가 적잖다. 데뷔 당시의 비애와 답답함을 성공 이후 바라볼 때 당사자의 마음 못잖게 팬들의 안타까움 역시 꽤 깊은 것도 사실이다. 김경호는 데뷔 직후의 쉽지 않은 과정 속에서도 꿋꿋하게 음악을 향한 열정을 유지하면서 성공의 길에 접어든 가수이다. 철이와 미애를 히트시켰던 가락엔터테인먼트의 이승호 기획실장은 함께 근무하던 김경호의 가창 실력을 인정하고 데뷔 앨범 제작의 기회를 마련했다.

그러나 조성모의 「투 헤븐」 등을 작사하는 등 유명 작사가로도 활동하던 이승호가 뮤직디자인으로 이직을 하면서 김경호의 앨범 제작은 무산되었다. 이후 이승호는 뮤직디자인 서희덕 대표에게 김경호에 대한 가능성을 피력했고, 김경호는 뮤직디자인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고 녹음 작업을 준비했다. 음반의 기획 단계에서 김경호가 자신의 데뷔 음반이 ‘록을 중심으로 하는 앨범’으로 제작되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프로듀서를 맡은 이승호는 헤비메탈 밴드 아발란쉬(Avalanche) 출신의 마경식과 록적인 작법을 지닌 유승범 등에게 곡을 의뢰했다.

그러나 김경호의 데뷔 앨범은 쉽게 표현해서 제작비도 건지지 못할 정도로 실패하고 말았다. 앨범이 발매되던 당시 가요계는 댄스뮤직이 큰 강세를 보이고 있었고, 앨범이 발매된 이후 소속사의 홍보와 마케팅이 부족했던 상황도 큰 이유였다. 그나마 미디어에 노출될 때에도 록적인 색감을 강하게 지닌 앨범으로 소개되며 대중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말았다. 성공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이 앨범에는 뛰어난 음악성을 지닌 두 곡의 노래가 존재한다. 김경호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은 이승호가 스틸 하트(Steel Heart)의 「She’s Gone」을 염두에 두고 완성한 「마지막 기도」였다. 국내의 대표적인 테크니컬 기타리스트 이현석은 당시까지 세션 참여를 일체 안하는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현석은 우연한 기회에 「마지막 기도」의 데모 버전을 듣게 되었고, 앨범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하며 레코딩에 참여했다. 김경호 보컬의 시작을 알린 넘버로 기억되는 「마지막 기도」는 2집 앨범이 크게 히트하면서 뒤늦게 주목을 받으며 다시 수록되었다.


변성기를 거치지 않았다는 김경호의 목소리는 타고난 미성을 지니고 있으며, 엄청난 연습을 통해서 스트라이퍼(Stryper)의 마이클 스위트(Michael Sweet)와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롭 헬포드(Rob Helford) 등 대표적인 고음역대 보컬리스트들의 장점을 고르게 터득해 낸 결과물이었다. 또한 김경호의 가창은 중저음역부터 고음까지의 배음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며 전개했고, 풍성한 성량을 바탕으로 하이톤을 많이 구사했다. 무엇보다 김경호는 밴드 활동이 없었음에도 록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로 인정받으며 성공을 거뒀다. 1집의 실패 속에 지방의 한우축제와 같은 행사에서 노래를 하는 등 장고의 시간을 보내던 김경호는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아버지의 압력을 받다가, 예당엔터테인먼트로 전속계약이 이양되었다. 이 시기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김경호는 음악적 변신을 꾀한 2집에서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큰 히트를 기록했고, 1집 앨범 역시 뒤늦게 관심을 이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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