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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an 29. 2020

지박 JI Park [DMZ]

시대의 파편을 선과 현으로 완성하다

이미지로서의 굵은 선을 음악의 심연으로 완성해 낸

JI Park [DMZ]

지박에게 2019년 한 해는 의미가 큰 시간이었다. 인천아트플랫폼 공연예술분야 입주예술가로, 플랫폼창동61의 협력 뮤지션으로써, 그리고 세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협업 작업을 이루며 두 장의 정규 음반까지 발표했다. 또한 그가 지닌 음을 향한 고귀한 줄기는 활짝 핀 꽃잎처럼 장엄한 작품 [DMZ]에 이르렀다.

 

뮤지션 JI PARK

가느다란 선이 음률을 이루며 여러 조각으로 파열을 이룬다. 그 파열은 다시 거대한 음곡을 지으며 청자를 품어 안는다. 지난 몇 년 동안 지켜봤던 뮤지션 가운데 누구보다 인상적인 음악적 폭을 보여준 뮤지션이 지박(JI PARK)이다. 그의 음악에는 병존과 공생을 넘어선 다양함과 독특함이 감상에 파이고 또 끊이지 않고 흐른다.  

지박은 가능한 모든 영역에 걸치는 장르를 넘나들며 음악계 전반에 획을 그어 나가고 있는 현대무용음악감독이자 작곡가, 첼리스트이다.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 출신인 그는 살롱 드 오수경의 멤버로 활동하며 2014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상’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지난 6년 동안 ‘지박컨템포러리 시리즈’라는 타이틀로 17개의 컨템포러리 콘텐츠를 발표하며 작품을 통한 소통에도 공을 들여 나왔다. 지박과 나눈 인터뷰를 바탕으로 구성된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단서(丹書)는 음악을 향하는 그의 자세에 있다. 혼신과 심혈을 기울인다는 표현은 음악을 향한 지박의 진심에서 먼저 발견된다. 그리고 그가 참여했고 발표한 음악과 공연에서 이는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같은 시기에 발표된 두 장의 라이브 앨범

지박은 2019년 11월 말에 두 장의 음반을 동시에 내놓았다. [L'Inferno : Adapted Soundtrack vol. 1]과 [DMZ]가 바로 그 작품이다. 연말부터 화제에 올랐던 두 작품은 그가 인천아트플랫폼의 입주작가로 선정된 이후의 인연을 토대로 제작되었고 발매될 수 있었다. 두 작품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협업 뮤지션들의 포지션과 역량에 있다. 두 작품에는 모두 일렉트로닉 드림팝 듀오 HEO의 허준혁이 참여하고 있다. HEO는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을 수상한 이력을 지닌 팀이다. 변화를 거듭하며 성장을 이룬 HEO의 음악 여정에는 신스를 사용하는 방식과 사운드디자인에 따라 독특한 색감을 지닌 그들만의 표현법이 존재한다. 이러한 색감은 [L'Inferno : Adapted Soundtrack vol. 1]과 [DMZ]에도 충실하게 채워졌다.    

  

정규 앨범으로는 2014년 [9000Km+] 이후의 작품이다. 특이한 건 두 장의 앨범이 거의 동시에 발매되었다는 점이다. 의도한 바가 있는지.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예술가로 활동할 때 옆 스튜디오에 있던 사운드 아트 그룹 COR3A와의 협업작업이 진행되었다. 당시 공연실황 작업의 결과물이 지박XCOR3A의 [L’inferno] 음반이고, [DMZ]에 참여한 뮤지션이 COR3A의 HEO(허준혁)이다. 각기 다른 공연이 한 달 사이에 벌어졌고, 믹싱과 마스터링, 재킷 디자인 작업 모두 함께 이루어졌다. 특별히 의도한 바 없이 각 앨범의 맥이 다르다는 면에서 이틀 간격을 두고 발매하게 되었다.     


현악과 음악에 대한 지박의 생각

지박은 즉흥음악 연주자이자 작곡가이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이후에 프리재즈에 매료되어 보스턴 뉴잉글랜드음악원 석사과정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했다. 가야금이나 거문고와 같은 전통적 울림부터 아방가르드 전법, 여기에 노이즈, 미니멀적 요소를 동원하여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제대로 구축해 낸 첼리스트이다. 25현 가야금 주자 서정민의 2016년 작품이자 그래미어워드 ‘월드뮤직 앨범’에 엔트리되었던 앨범 [Cosmos 25]에서 지박은 ‘미부미불이(美不美不二)’ 트랙에 참여했다. 또한 서정민의 2019년 작품 [HOME]에서는 ‘새별오름’과 ‘먼동이 틀 무렵 ver2’에 참여해서 자연과 소통하는 현의 깊은 나래를 유감없이 선보였다. 2014년 첫 음반 [9000Km+] 이후 지박은 라이브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에 중점을 두며 활동을 이어 나오고 있다. 뉴욕과 유럽을 오가며 아르헨티나, 이란, 인도, 독일, 미국, 오스트리아 등에서 현대음악과 현대무용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과 협업을 펼쳤던 경험은 현재에 그를 배가해 낸 소중한 과정이었다. 그가 지닌 현악에 대한 사고와 뮤지션들과의 소통에 대한 생각을 살펴본다.      

2014년 판소리와 비디오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구성된 앨범 [9000Km+]을 발표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음악적인 감각이나 이상에 있어서 변화된 점이 있는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그 당시부터 무엇보다 진솔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음반 혹은 공연음악으로 담아내려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기법적으로는 작곡을 함에 있어서 앙상블의 규모를 점점 확장해나가는 편이고, 현악기 전공자로써 누구보다 현악기를 잘 알고 또 현악기를 위한 곡들을 작업하는 부분에 흥미를 느낀다.     

 

콜라보레이션이 많은 편인데 뮤지션들과의 소통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눈에 띄는 방법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둘러서 얘기하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잘 맞는 편이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을 선호한다. 협업 작업을 오래 이어오는 경우에는 보통 첼로 혹은 음악적인 부분을 완전히 신뢰하고 내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인터뷰에서도 나타났듯이 지박은 음반보다 라이브에서 최상의 작품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편이다. 이는 연주에 임할 때 무엇보다 ‘자신의 행위와 울림에 진심을 담고자 노력한다’는 그의 철학에 기인한 것이다. 지박은 재즈와 아방가르드를 생각하기 전에 그만의 것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음악을 선보이며 실험이 곁들여진 행보마저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지박의 프로필 가운데 이채로운 부분은 2015년 재즈 피아니스트 바르단 옵세피언(Vardan Ovsepian)과 프리재즈 음반 [As Autumn Departs]를 미국에서 발매했다는 점이다.  

바르단 옵세피언의 [As Autumn Departs]에 참여하며 EBS 공감 등에서 협연을 펼친 적이 있다. 현대 재즈의 숨은 보석과도 같은 뮤지션으로 평가받는 그와의 인연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2014년 LIG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제2회사천재즈워크샵’이 진행되었다. 당시에 크리에이티브 계열에서 명성 있는 교육자이자 연주자들이 강사진으로 다수 참여했다. 앤드류 시릴(Andrew Cyrille)과 랄프 알레시(Ralph Alessi) 등과 함께 바르단이 강사진으로 자리를 했었다. 워크숍이 끝나고 바르단이 앨범 녹음을 제안했고 그때 녹음한 즉흥 듀오 앨범이 바로 [As Autumn Departs]이다. 이후 2015년 미국에서 음반을 발매했고, 2016년 LA의 재즈클럽 블루 웨일에서 VOCE(Vardan Ovsepian Chamber Ensemble)와 협연을 진행하면서 음악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시대의 파편을 선과 현으로 완성해 낸 [DMZ]

‘DMZ(Demilitarized zone, 非武裝地帶)’. 젊은 작가이자 뮤지션에게 그곳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어떠한 이유로 그는 오래도록 잊힌 땅에 자신의 음악을 담아내려 했던 걸까. 그가 연출한 [DMZ]에는 인문학과 상상이 여러 갈래로 결합되어 함께 하고 있다. ‘DMZ’를 심미화해 낸 그의 작품 [DMZ]는 ‘현악의 미학’이라고 부를 만한 장엄한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GOP’와 ‘GP’라는 이중의 철책이 가로막고 있는 숨죽인 땅은 지박의 손을 통해 분해되어 거듭났다.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장대하게 펼쳐진 천연의 지역이자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이 만나는 ‘DMZ’ 일대는 9곡의 냉엄한 음악으로 안착했다. 5가지 모음곡인 ‘DMZ Suite’와 4개의 악장으로 이어지는 ‘Togyo(땅굴)’로 구성된 지박의 [DMZ]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해 본다.    

  

앨범의 주제로 자리한 ‘DMZ’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어떻게 되는지.

2018년에 독일 베를린에서 연주 투어를 가진 적이 있다. 당시에 베를린 장벽과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등을 마주하면서 한국에 돌아가면 DMZ를 꼭 한 번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지리적으로나 특수적인 지점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막연한 생각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우연찮은 기회에 비디오 아티스트 이지송 감독의 제안으로 그 곳과 관련된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DMZ무경계 프로젝트>라는 기획으로 국제 시각예술가 그룹인 ‘Shuroop&Nine Dragon Heads’ 소속 50명과 함께 DMZ를 답사했는데, 지리적 위치와 사회적 기능들을 과거부터 미래까지의 단계로 구분하면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부터 시작된 [DMZ]의 연결 고리가 주요 지역을 거쳐 인천까지 이어진 셈인데, 이전 작품 성향과 동일하게 실황으로 녹음되어 발표되었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창작공간이라 할 수 있는 인천문화재단-인천아트플랫폼의 기획공연 ‘IAP 콜라보 스테이지’와 레지던시 프로그램인 ‘창·제작 발표지원’을 통해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DMZ]는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발표되고 있는 ‘지박 컨템포러리시리즈 VOL.17’로 기록된 작품이다.      


지뢰가 터진 듯 섬세한 선으로 연결된 파쇄(破碎)적인 느낌의 재킷이 인상적이다.

앨범을 제작하면서 DMZ에 대한 첫 느낌은 ‘선(Line)’이었고, 이는 전체적인 콘셉트로 중심을 이뤘다. 분리되어 있는 여러 선을 중심으로 지리적, 물리적, 문화, 정치, 사회적 상황들이 모두 변해왔고, 매일 느낄 수 없다고 해도 모든 이들의 하루에 영향을 주어 온, 그리고 여전히 주고 있는, 또한 앞으로도 주게 될 흐름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했다. 결국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음악으로 묶여 있는 이미지로 완성되었다. 음반 작업을 할 때 음악 못잖게 재킷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DMZ]의 재킷 작업은 지박XCOR3A의 [L’inferno]와 동일하게 김정민 디자이너가 전체 아트워크를 담당했다. 내가 상상하고 있던 아트워크보다 더욱 DMZ다운 디자인을 완성해 줬다. [DMZ] 작업을 진행하며 한 가지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음반의 안쪽 면에 자리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진행되었던 휴전협정문서가 디자인의 일부로 삽입되었는데, 문서를 살펴보면 우리나라 대통령의 사인이 없다. 중요한 시사점을 나타내는 문서라 생각해서 담게 되었다.      


여전히 연주에서 실험적이고 기괴하다 할 수 있는 기법들이 많이 발견된다.

연주자 입장에서 실험적인 사운드들에 대해 항상 호기심이 많고 연구를 하는 편이다. 작업을 하면서 내가 연주하고 있는 악기가 첼로라는 인식을 넘어선 사운드를 발견했을 때 무척 기쁘다. 그리고 연주 외에 작곡과 편곡 작업도 병행하기 때문에 다른 작품의 곡들을 연주할 때 ‘작곡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라는 부분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수많은 고민과 의도 속에서 곡이 완성되고 연주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DMZ]는 특히 손이 많이 갔고 공을 들여 단 한 번의 레코딩에 임할 수 있었다.     


이번 앨범 작업, 즉 [DMZ]의 레코딩이 이루어진 공연에 대해 부연 설명을 부탁한다.

한 앨범에 함께한 주요 뮤지션과의 소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진 라이브였음에도 만족감이 큰 편이다. 실제로 전체 멤버와의 리허설은 공연 당일뿐이었다. 바르단이 미국에서 와서 참여한다는 부분과 다른 연주자들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작업을 해왔던 스트링 퀄텟 멤버들이었기에 가능했고, 바르단은 한 번의 설명으로 공연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던 공연이었고, 쉽게 만날 수 없는 소중한 레코딩이었다.      

 

[DMZ]의 모든 수록곡들은 한 편의 서사극을 마주하는 기분이 강하다. 많은 작품들이 하나의 영상을 상기하게 만든다. 특별히 의도한 부분이 있는지.

아마도 지난 7년 동안 비디오아트 작가들과 전시와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진행해 온 경험이 도움이 된 듯하다. 개인적으로 영상과 함께 하는 작업을 무척 좋아한다. 평소에도 영화를 보고 음악작업을 자주 하고 있는데. 음악과 영상은 앞으로도 분리될 수 없는 주요한 지점이 될 거라 생각된다.       


자신이 지닌 재능의 축을 이루고 단계와 겹을 거듭하며 신 전체를 섭렵해 가고 있는 지박의 음악은 아티스트로의 승화가 필연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 결과에 있어 확고한 무기로 작용될 작품이 바로 [L'Inferno : Adapted Soundtrack vol. 1]과 [DMZ]이다.      


(이 글은 2020년 재즈피플 2월 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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