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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an 03. 2017

영화를 빛낸 음악, '레 미제라블'과 '향수'

숭고한 민중의 저항과 바람이 담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향수

숭고한 민중의 저항과 바람이 담긴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향수



향수의 역사는 오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인간들이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향나무 잎에서 즙을 내어 몸에 바르던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그리스와 로마 시대를 지나 중세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가장 화려한 번성기를 맞이했다. 


요즘은 가정에서도 ‘디퓨저(Diffuser. 유리관에 담은 액체에 막대를 꽂아 향기를 퍼지게 하는 인테리어 소품)’나 ‘룸 스프레이’를 흔히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현대인에게 향수는 개인의 취향을 잘 표현해주는 중요한 소장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은밀하고 유혹적인 소유물이 되어 버린 향수의 분위기가 이렇게 점점 고급스럽게 변하다보니 이제는 누구나 좀 더 개성 있는 자신만의 향을 누리고 싶어 하는 추세 역시 강해지고 있다. 한국인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어 예전에는 해외여행을 나가야 구할 수 있었던 세계적인 ‘니치 향수’ 회사들도 앞 다투어 국내의 대형 백화점이나 번화가에 로드샵을 오픈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제사를 지내던 신전 벽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뜻하는 ‘니키아(nicchia)’에서 유래된 ‘Niche’는 ‘틈새’라는 뜻으로써, ‘니치 향수’란 제한된 고객들에게만 판매하는 소수지향 최고급 품질의 향수를 말한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니치 향수 브랜드는 프랑스의 ‘딥 디크’와 ‘아닉 구딸’, 영국 ‘조 말론’과 ‘크리드’, ‘펜할리곤스‘ 등이 유명하다. 이 향수들은 각기 고현정과 전지현, 그레이스 켈리, 다이애나 황태자비, 송혜교 등이 애용했던 향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상류층의 기호에 맞춤 제작된 니치향수 중에서도 명품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까르뚜지아’와 ‘아무아쥬’, ‘랑세’, ‘클라이브 크리스찬’ 등으로 특히 ‘클라이브 크리스찬’은 2억 여 원을 호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수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최고가의 향수일수록 명품 중의 명품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밖에 연예인들이 사용하는 니치 향수로는 배우 유아인이 쓰는 프레데릭 말의 ‘제라늄 뿌르 무슈’와 가수 지 드래곤의 향수로 잘 알려진 ’뮤스크 라바줴‘가 있다. 또한 2016년 초에 스릴과 감동적인 전개로 수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부여잡았 드라마 ‘시그널 16회’에서 김혜수가 뿌린 것으로 유명한 아틀리에 코롱의 ‘수드 마그놀리아 압솔뤼’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남자 주인공 현빈이 애용하는 크리드의 ‘밀레지움 임페리얼’ 등도 있다. 



1985년 출판되어 세간에 충격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파트리크 쥐슨킨트의 소설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치명적인 향기의 마력에 빠져 인간의 향기를 수집하려고 한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의 배경이 된 18세기의 프랑스는 유럽국가들 중에서도 향수의 이용과 제조가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프랑스의 그라스 지방은 가죽산업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곳으로, 가죽에서 발생하는 악취를 막고자 사용했던 향수제조 기술도 함께 발달했다. 태양 왕 루이 14세는 ‘향수의 제왕’이라 불릴 만큼 향수 애호가로 유명했는데 화려한 궁정문화와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펼쳤던 사치스러운 향락은 도를 치나쳤었다. 루이 15세 때 일어난 프랑스 시민혁명은 귀족중심의 예술과 문화가 시민사회로까지 퍼져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혁명과 향락, 코를 찌르는 향기와 분노의 체취가 뒤엉켜 있었던 18세기말 프랑스 사회의 숨 막히는 갈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당시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이 바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Le Miserable)>이다. 1862년 출간된 <레 미제라블>은 나폴레옹 1세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이후의 20년을 배경으로 하는 가운데 개혁의 격동기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원죄와 희생, 순수와 타락을 상징하며 죄와 벌의 두려움 속에서 신에게 용서를 갈구하는 태초의 정죄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2012년 개봉한 영화 <레 미제라블>은 뮤지컬 영화로는 드물게 국내 관객 500만이 넘는 대 흥행을 기록했는데, 이는 뮤지컬의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라이브로 녹음한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탄탄한 연기력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휴 잭맨의 열연과 중후한 음색은 시종일관 관객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는데, 그가 불렀던 ‘Who Am I’는 흡사 고독한 수도사가 만들어내는 태초의 이끼내음 가득한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까르뚜지아 코랄리움’의 향기를  연상시킨다. 앤 헤서웨이의 처연한 절규 ‘I Dream A Dream’은 숙녀에서 창녀로 변해가는 오묘한 향을 품고 있는 프레드릭 말의 ’뮤스크 라바줴‘의 향기를,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청아한 음색으로 요정처럼 노래하는 ‘In My Life’에서는 아닉 구딸의 ‘쁘띠 쉐리의 향이 풍기는 듯 하다. 또한 잊을 수 없는 감동의 합창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향으로 표현한다면 세계에서 가장 비싼 향수 클라이브 크리스찬의 ‘No.1 임페리얼 마제스티’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관객들에게 웅장한 감동을 안겨주었던 영화 <레 미제라블>은 제 7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 남우주연상(휴 잭맨), 여우조연상(앤 헤서웨이)을 휩쓸었다. 



한 편의 영화와 뮤지컬에서 보고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감동처럼 하나의 향기가 지닌 환희와 여운 역시 무궁무진하다. 고가의 향수가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향기는 아니듯이 잠시 스쳐가는 작은 향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뿌리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넓고 향수는 여전히 많다. 내게 어울리는 향만 고집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면 누구나 무한대의 향기를 무한대의 가격에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오묘하게 조합되어 사람을 도취시키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값비싼 향기들이 진정한 자신 삶의 모습과 내면까지도 고급스럽게 바꿔줄 수 있을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에게 한번쯤 질문해 봐야 하겠다. 


전문 보기 : http://www.groovers.kr/column/LOTUSd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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