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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Apr 01. 2022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1925년 캐나다에서 태어난 오스카 피터슨은 ‘재즈 피아노의 왕’으로 불린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이다. 트럼페터이자 피아니스트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5세 때부터 피아노와 트럼펫을 배웠지만, 결핵에 걸려 피아노에 집중했다. 그는 14세 때 캐나다 방송협회에서 주관한 음악대회에서 우승한 이후 재즈와 부기우기, 랙타임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아트 테이텀에 큰 영향을 받은 오스타 피터슨은 리스트와 바흐, 라흐마니노프 등 클래식에도 심취하며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했다. 10대 후반에 재즈로 전향해서 캐나다 음악계에서 인정받던 오스카 피터슨은 1949년 노만 크란즈를 만나 미국에 진출했고 레이 브라운과 트리오를 결성해서 맹활약했다. 2007년 사망 직전까지 세계 각지를 돌며 공연을 펼쳤던 오스카 피터슨은 강렬한 스윙감과 클래식에 주한 구성력, 그리고 심도 있는 연주로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으로 기록되었다.   

오스카 피터슨은 <The Trio>(1974)부터 <Saturday Night At The Blue Note> 등의 음반과 활동으로 여덟 번에 걸쳐 그래미어워드를 수상했으며, 캐나다 명예의 전당과 유네스코, BBC 등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고르게 수상했다. 또한 16개 대학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은 오스카 피터슨은 캐나다를 대표하는 뮤지션이자 최고의 재즈 연주자였다. 재즈 역사에 있어서 오스카 피터슨만큼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수많은 뮤지션과 소통을 이은 뮤지션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200장 이상의 앨범을 발매했고 60년 이상의 연주 경력을 통해 전 세계를 돌며 3천 회에 가까운 공연을 전개했다. 이는 오스카 피터슨이 지닌 음악적 역량과 다채로운 작법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장르적인 경계를 벗어난 결과였다. 비밥으로 주하게 흐르던 1940년대에 오스카 피터슨은 탁월한 리듬감과 즉흥적인 멜로디를 통해 스윙만을 고집했다. 그는 ‘재즈는 곧 스윙이다.’라는 신념으로 자신의 인생을 불태웠다.      

오스카 피터슨의 음악 여정은 듀엣과 트리오, 콰르텟에 집중되어 전개되었다. 음악적 동반자인 레이 브라운과 듀엣으로 <Tenderly>(1950)를 발표했고, 냇 킹 콜이 히트시킨 피아노 트리오 양식을 계승해서 트리오를 결성해서 크게 성공했다. 드럼없이 베이스와 기타로 구성된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는 다양한 화성과 노트를 사용해서 세련된 연주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 결과물은 <Keyboard>(1950), <An Evening With Oscar Peterson>(1950), <Nostalgic Memories>(1951) 등을 필두로 10여 년 동안 큰 성공으로 이어졌다. 기타 파트를 드럼으로 대체한 이후 <The Trio>(1961), <Night Train>(1962), <Canadian Suite>(1964), <We Get Request>(1964) 등의 걸작을 쏟아냈다. 음악 활동 외에도 <The Silent Partner>(1978) 이후 12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2007년 사망한 오스카 피터슨은 피아노를 통한 재즈 미학을 완성하고 수많은 후배들에게 영향을 미친 뮤지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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