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파커(Charlie Parker )
‘버드’, ‘야드버드’로 불렸던 찰리 파커는 비밥 시대를 상징하는 재즈 뮤지션이자 모던 재즈 의 기반을 다진 뮤지션이다. 미국 캔자스시에서 1920년에 태어난 그는 11살 때 알토 색소폰을 독학으로 연주했다. 1934년 학업을 중지하고 지역 밴드를 오가며 연주의 깊이를 익힌 찰리 파커는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연주하며 전환의 기로에 들어섰다. 레스터 영의 음악에 심취하던 그는 1940년 뉴욕으로 이동해서 뉴욕 52번가에 위치한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연주하며 디지 길레스피, 델로니우스 몽크, 조 가이, 케니 클라트 등 20대 초반의 젊은 뮤지션들과 함께 새로운 음악적 실험을 감행했다. 빅밴드 중심의 정형화되고 상업적인 스윙에 흥미를 잃은 찰리 파커는 자유분방한 재즈 연주 스타일로 정의되는 비밥 시대를 열었다. 또한 화성과 조성, 리듬과 멜로디의 새로운 전개를 통해 모던 재즈 시대를 개척했다.
찰리 파커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춤에 최적화된 스윙은 1930년대 중반부터 백인연주자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즉흥적이고 역동적인 재즈가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자존심으로 재즈를 예술로 승화해냈다. 그가 연주할 때 조합하는 음과 프레이즈들은 매우 독특했으며, 이전 재즈 연주에서 발견할 수 없는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찰리 파커가 연주했던 ‘The Hymn’은 그가 연주한 블루스곡이었고, ‘April In Paris’, 'Repetition‘은 스트링 오케스트라와 협엽한 곡이었다. 이처럼 찰리 파커는 재즈 외 장르도 재즈 안으로 유입해서 새로운 틀까지 형성해냈다.
빌리 엑스타인 밴드에 합류하면서 찰리 파커는 첫 레코딩을 경험한다. 1944년 디지 길레스피와 듀오를 거쳐 버드 파웰, 막스 로치, 찰스 밍거스로 구성된 퀸텟을 결성하며 민턴스 플레이 하우스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가졌다. 이 시기를 전후해 ‘Hot house’, ‘Donna lee’, ‘Groovin’ high’, ’Salt Peanuts’, ‘Shaw’ nuff’ 등 그의 대표곡이 쏟아지듯 발표되었다. 1947년 투어를 돌고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듀크 조던, 토미 포터, 막스 로치, 그리고 줄리어드 음대를 다니던 마일스 데이비스를 영입했고, 사보이 레이블에서 다수의 음반을 발표하며 절정을 맞이했다. 이후 버브 레이블과 계약한 찰리 파커는 디지 길레스피와 협연한 <Bird&Diz>(1950)를 내놓았고, 새로 편성된 ‘The Quintet’으로 연주실황 명반 <Jazz At Massey Hall>(1953)을 발표했다. 평소 약물에 과하게 노출되었던 그는 1955년 3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찰리 파커의 음악은 사후 마일스 데이비스와 존 콜트레인에게 전이되어 모던 재즈의 시대를 맞이했고, 극렬 재즈광인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포레스트 휘태커를 주인공으로 찰리 파커의 영화 <버드>(1988)를 제작했다. 그의 음악은 아직도 전 세계 재즈 공연장과 클럽, 음반에서 연주되거나 새롭게 해석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Bird Of Paradise’, ‘Lover Man’, ‘Now's The Time’, ‘Billie's Bounce’, ‘Anthropology’, ‘Yardbird Suite’, ‘Ornithology’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