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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Apr 03. 2017

영화를 빛낸 음악,
'아버지를 위한 노래'

아버지를 위한 노래(This Must Be The Place)

바람의 방향에 맞춰 나부끼고, 흔들리고, 또 분열되는 자아는 자신의 행동과 기억, 그리고 존재로서의 마지막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자신을 향하고, 자신에게 돌아오는 노래를 담고 있다.

상실의 자아가 걷는 거자필반의 인생

2011년에 개봉된 파올로 소렌티노(Paolo Sorrentino) 감독의 <아버지를 위한 노래(This Must Be The Place)>는 과거로 인해 자아를 감춘 채 살고 있는 주인공이 뜻하지 않은 과거를 이끌어 현재에 마주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연출을 맡은 파올로 감독은 2014년 영화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auty)>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그레이트 뷰티>를 위한 황량한 내면의 감정을 높은 질감으로 예견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도입부와 진행이 매우 좋은 영화다. 커다란 연출이 없음에도 각 씬을 매듭지어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숀 펜(Sean Penn)의 연기는 열 번의 터치보다 하나의 스케치가 더 소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전설의 뮤지션 ‘셰이앤’을 둘러싼 과거와 현재에 대한 접근법과 감상자에게 주인공의 지난 시간을 매끄럽게 연상시키는 화법은 너무나 유연하다. 그릇된 존재의식과 죄의식 속에서 호흡하는 숀펜, 그리고 그의 곁에서 함께 하는 프란시스 맥도맨드(Frances McDormand)와 이브 휴슨(Eve Hewson) 등의 연기 역시 극에 잔잔하게 배여 있다.

연출의 밑바탕이 된 포스트펑크와 매드체스터

이 영화를 마주하면 떠오르고, 또한 인지해야 할 시기와 배경이 존재한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를 관통한 포스트펑크와 매드체스터 무브먼트가 바로 그것이다. 펑크의 과격한 흐름을 우려하고 반감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젊은 뮤지션들은 뉴웨이브와 새로운 헤비 사운드의 조류 속에서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그들 스스로 새로운 음악적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포스트펑크라는 이름 아래 그들의 다짐은 펑크의 오류와 크게 다를 게 없이 변모되었으며 번복되고 말았다. 사회적 분노와 대상의 파괴에 몰입했던 펑크에 비해, 포스트펑크는 죽음과 고통을 찬미함으로써 자기 안의 공포를 극대화시키며 현실을 벗어나는 의식에 치중했다. 그리고 자의건 타의건 그들의 의식과 행동은 동시대를 살면서 열광하던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투명한 맥을 이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시기에는 짐 모리슨(Jim Morrison)을 연상시키는 에코&더 버니맨(Echo&The Bunnymen)의 이안 맥클로크(Ian McCulloch)가 있었으며, 몸과 마음이 함께 병들어 나락으로 내려앉던 영국 젊은이들의 음울함을 대변했던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이안 커티스(Ian Curtis)도 있었다. 

짐 모리슨 이후 가장 시적이고 루 리드(Lou Reed) 이후 개인의 상실감을 가장 잘 포착한 작사가로 통했던 그들의 모습은 큐어(The Cure)의 로버트 스미스(Robert Smith)처럼 창백한 얼굴에 짙은 화장을 하고 검은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면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고스록과 글램록으로 변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의 과거는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마지막과 흡사한 데자뷰로 남아 있다.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포스트펑크의 본거지였던 맨체스터에서 1980년대 초반의 전설적인 뮤지션들의 흥망성쇠를 다뤘던 영화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24 Hour Party People)>과 시대적 연결점이 존재한다. 조이 디비전과 해피 먼데이스(Happy Mondays), 뉴 오더(New Order) 등 당시의 필드를 대표했던 그룹들이 등장했던 이 영화는 ‘매드체스터 무브먼트’의 흐름을 나지막이 보여줬다. 

조이 디비전으로 시작해서 조이 디비전을 뿌리로 하는 새로운 음악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새로운 매드체스터 사운드. 격조가 다소 다른 영화지만 음악적 동질감이 분명하게 묻어나는 두 영화를 이어서 마주한다면, 이제는 기억에서 사라진 1970년대 후반 직후의 황홀했던 영국 음악과 당시 풍토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그 당시의 음악이 개인과 대중에게 미친 영향이 현재에 어떻게 이어지고 변형되고 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아버지를 위한 노래>에서 연출과 연기 외에 매력적인 요소는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음악을 담당했다는 점이다. 영화의 제목 <This Must Be The Place>는 토킹 헤즈가 1983년에 발표했던 곡으로 번역된 제목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표현 그대로가 아닌 다른 의미의 음악, 즉 숀 펜의 연기로 연주되고 있다. 한편 데이비드는 영화를 위해 윌 올드햄(Will Oldham)과 프로젝트 그룹 피시스 오브 시트(The Pieces Of Shit)를 결성해서 5곡의 노래를 제공했다.


마지막으로 극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현시대에 몇 번이고 곱씹을만한 명제다. “우리는 자기도 모른 사이에 ‘내 인생은 이럴거야’라고 말하는 나이에서 ‘인생이 그런거죠’라고 말하는 나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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