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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yd 고종석 Jul 17. 2017

신승훈, ‘이후로도 오랫동안’ 함께 할 아티스트-1

신승훈, ‘이후로도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할 아티스트 - 1

하나의 소리가 울리고, 그 울림이 더욱 아름답게 메아리치며 빛이 난다. 그 모습을 지나 그림같은 선율이 흐르면 온 계절을 품고 재잘거리는 온갖 새들의 나부낌은 더없이 온화하게 세상에 펼쳐진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절대적인 업적을 남기며, 여전히 음악을 통한 매력적인 호흡을 진행하고 있는 신승훈의 음악세계는 아름다운 메아리이며, 그림과 같은 선율이었다. 그리고 그의 음악은 보다 온화해질 세상을 대변해 왔다. 

아티스트 신승훈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역사에 한동안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대기록과 파괴력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신승훈. 한국 대중음악사에 있어서 신승훈의 등장은 조용필을 이어 19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인 김현식과 유재하, 이문세의 영역을 마주하며 새로운 음악산업의 활로를 개척했다는 점에서 먼저 큰 의미를 갖는다. 


언더그라운드를 거쳐 대중들을 사로잡은 이후에도 메인 스트림에서의 활동을 거부했던 김현식. 일률적으로 흐르던 대중가요의 작풍에 다양한 세련미를 부여했지만, 사후에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았던 유재하. 그리고 한국형 발라드의 선구를 다졌던 이문세. 신승훈은 이렇듯 각기 다른 세 명의 뮤지션이 아로새긴 한국 대중음악사의 정통을 이어받아 보다 고급스러운 대중화를 일궈낸 뮤지션이며, 앨범과 콘서트를 일체화시킨 뮤직 비즈니스의 완성까지 이끌어낸 아티스트이자 비즈니스맨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신승훈이 전개한 수많은 히트곡과 대중적 인지도는 신승훈과 함께 ‘승승장구하자’던 이승환, 그리고 김건모, 서태지, 조성모로 이어지는 한국대중가요사의 중요한 맥을 짚었으며, 음반 시장의 활성화는 물론 음원 시장의 개척과 안정화에 이르기까지 큰 공헌을 남겨왔다. 

자신의 고향인 대전 지역의 언더그라운드에서 대중가수 이상의 인기를 얻으며 체계적인 데뷔를 이룬 신승훈은 단지 노래만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닌, 자신에게 최적화된 음악을 직접 작사하고 작곡했으며 편곡과 프로듀서로서의 능력 역시 높게 인정받아온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신승훈은 1990년 데뷔 직후부터 ‘국민가수’, ‘발라드의 황제’, ‘영원한 밀리언셀러 가수’ 등으로 불리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발라드라는 장르 안에서 기타 장르와의 연대와 유연한 음악적 틀을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 나온 신승훈은 자신의 앨범과 OST, 해외 활동과 다각화된 라이브를 통해서 끝없는 음악적 소통을 진행해 나오고 있다. 


신승훈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사에 갖는 의의

신승훈의 등장은 한국대중음악사의 맥을 제대로 짚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등장 이전 한국 대중가요의 흐름을 잠시 살펴보자. 한국대중음악은 1970년대에 이르러 대형 음반사 중심의 시장으로 압축되었으며, 정치문화사회적 공황 속에서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 


흉흉했던 민심을 전환시키기 위해 197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는 다수의 세계 가요제가 주최되었으며, 유명 팝송의 번안곡과 송창식, 김민기, 양희은 등을 필두로 하는 싱어 송 라이터가 대거 등장했고, 이어서 금지곡 시대를 거치게 된다. 국내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 시기에 김연자와 문주란, 이성애 등이 일본에 진출을 했고, 이후 방송 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대학가요제와 강변가요제 등을 통해 록그룹과 남녀 신인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며 한국대중음악은 새로운 기운이 덧입혀졌다. 1980년대 초반 에는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최진희, 주현미, 김용임, 현숙 등으로 대표되는 트로트 전성시대가 열렸고, 이 사이를 헤집고 음악적 테크닉과 가창력을 바탕으로 조용필이 슈퍼스타로 등장했다. 

1970년대 그룹사운드의 계보를 이어 1980년대의 중심에는 김현식과 들국화가 언더그라운드를 축으로 대중들에게 폭넓은 인지도를 형성하며 굵직한 계보를 완성했으며, 이 시점에서 신승훈 등장의 당위성과 가능성은 열리기 시작했다. 

데뷔 앨범 발매 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유재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점진적으로 다져진 가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서정미와 세련된 작풍으로 사로잡았다. 신승훈 스스로 “유재하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과거 인터뷰 내용처럼 신승훈은 유재하로 스케치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한국 대중음악사의 새로운 결을 완벽하게 채색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더해서 신승훈은 언더그라운드 활동을 통한 대중성의 확장과 메인 스트림에 등장함과 동시에 한국형 발라드의 세련미를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신승훈이 여전히 남기고이어가고 있는 기록

가수의 진정성은 대중과 가장 가깝게 마주서는 라이브와 혼이 담긴 앨범의 판매량으로 가늠된다. 신승훈의 업적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수많은 라이브를 차치하더라도 그가 발표한 앨범들의 경이로운 판매량에 있다.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통해 데뷔한 신승훈은 국내에서만 11장의 정규 앨범과 비정규 앨범을 포함해서 총 16장의 앨범을 발표해 나왔다. 1990년 데뷔 앨범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시작으로 7집 [전설속의 누군가처럼]까지 발매했던 모든 앨범이 1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던 신승훈은 최단 기간에 앨범 1,700만장을 판매한 아시아권 유일의 가수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5집 [Shin Seung HunⅤ]은 247만장이라는 경이로운 판매를 기록했는데, 그가 지금까지 판매한 앨범의 CD를 펼쳐놓으면 서울과 부산간 고속도로를 4번이나 왕복할 수 있는 수치라고 한다. 그의 앨범 중에서 집계가 남아 있는 기록을 잠시 살펴보자. 

1990년 [미소 속에 비친 그대] 좌동타이틀 140만장

1991년 [보이지 않는 사랑] 좌동타이틀 158만장

1993년 [Shin Seung Hun Vol. 3] ‘널 사랑하니까’ 170만장

1994년 [그 후로 오랫동안] 좌동타이틀 180만장

1996년 [Shin Seung Hun]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247만장

1998년 [Shin Seung Hun] ‘지킬 수 없는 약속’ 130만장

2000년 [Desire To Fly High] ‘전설속의 누군가처럼’ 100만장

2002년 [The Shin Seung Hun]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다면’ 84만장
 2004년 [Ninth Reply] ‘그런 날이 오겠죠’ 32만장

2006년 [The Romanticist] ‘Dream Of My Life’ 14만장


신승훈은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해외 시장을 타겟으로도 미니앨범과 스페셜 에디션 앨범, 싱글 등을 포함해서 총 13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1992년 [내일은 늦으리]에 ‘잃어버린 하늘’을 수록한 이후 11장의 컴필레이션 음반과 프로젝트 음반에 참여했다. 특히 2000년 김현식의 10주기 추모 앨범에서는 ‘가리워진 길’을 부르며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선배에 대한 온전한 마음을 담아내기도 했다. 

신승훈은 데뷔 이후 거의 모든 앨범의 타이틀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으며 2000년까지 라디오와 TV, 그리고 각종 음악 차트에서 1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이자, 1위를 가장 많이 등재시킨 작곡가로 기록되고 있다. 또한 1990년대 가수들의 히트를 가늠했던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 2회 수상, 본상 최다 수상을 기록했으며, 1990년부터 2006년까지 발표한 정규 앨범 10장이 모두 골든디스크를 수상했다.  

신승훈은 여타 성공을 거둔 가수들의 행보와 달리 독특한 커리어를 지닌 뮤지션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이채를 띄는 부분은 전 국민에게 사랑을 받는 공인임에도 데뷔 이래 지금까지 단 한편의 CF와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발라드 가수가 감정이 배인 노래를 부른 뒤 CF에서 특정 제품을 광고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신승훈 스스로 많은 제의와 유혹을 거부한 것으로 대형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이 오래전부터 엿보였던 대목이다. 


또 한 가지는 2006년 10집 앨범으로 활동하던 당시 미국의 기타 전문 제조회사 펜더(Fender)로부터 기타를 기증받은 점이다. 기타 제조회사 펜더는 세계적으로 뛰어난 연주가와 음악가로 인정받고 있는 이들에게 제한적으로 증정해 나오며 음악적 명예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에릭 클랩튼(Eric Clapton), 제프 벡(Jeff Beck), 에릭 존슨(Eric Johnson), 잉위 맘스톤(Yngwie Malmsteen), 스티비 레이본(Stevie Ray Vaughan), 일본 그룹 튜브(Tube)의 기타리스트 하루하타 미치야(Haruhata Michiya) 등 엄선된 뮤지션만 기증을 받았다. 신승훈은 국내 뮤지션 중에서 신중현보다 앞선 1996년 세계에서 7번째로 펜더를 기증받았으며, 이 기타는 펜더가 기증하는 최초의 어쿠스틱 기타였다. 

음악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신승훈은 2010년 1월 KBS의 오랜 음악 프로그램인 ‘열린음악회 ’에서 방송 최초로 단독 출연하는 기록도 남겼다. ‘신승훈과 프렌즈’라는 부제가 붙었던 이 방송은 설명절 특집으로 2010년 2월 14일 방영되었다. 공연 및 해외 뮤지션과 관련된 수많은 일화와 기록은 이하 내용에서 소개하겠다.      

신승훈의 가창과 음악성

신승훈은 데뷔 이전인 대학 재학시절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꾸준하게 활동해왔고, 누구보다 앞선 작사와 작곡 실력까지 다듬어 나왔다. 여기에 섬세하고 미성을 담은 출중한 가창 실력은 데뷔 이전부터 이미 독특한 그의 발음과 함께 최상의 창법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가수들의 평가기준 중 하나로 진성과 가성의 조화를 손꼽는다. 신승훈의 창법은 순수하게 묻어나는 진한 소리의 울림과 적절한 가성의 매력까지 우수하다. 또한 가창을 이룰 때 호흡이 매우 맑은 신승훈의 창법은 바이브레이션을 걸지 않은 상태에서도 전체 음을 길게 내지르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발라드는 큰 리듬의 변화없이 멜로디와 감성을 위주로 곡을 전개함으로 가창자에게 부분적으로 피곤함을 요하는 장르이다. 발라드의 부족한 요소였던 기능적인 틀을 개척한 이가 유재하였다면, 신승훈은 기능적인 틀에 폭넓은 감성과 가창의 혼을 집어넣어 발라드의 품격을 제대로 향상시켰다. 중기 작품 이후부터 신승훈은 성대를 색소폰의 리드라고 생각하며 비강과 두성을 이용한 발성을 구사했으며, 클래식의 발성법을 도용하면서 자신만의 목소리와 가창력을 더욱 풍성하게 다져 나올 수 있었다. 

더해서 신승훈의 곡에 대한 해석력은 가사와 주제에 의한 소화력이 뛰어나다. 그가 선곡하고 작업했던 대개의 곡이 그 스스로 작업한 곡이었지만, 신승훈은 발라드에 국한되지 않는 가운데 레게와 R&B, 모던록, 월드 뮤직과 순수 국악과의 접목을 이루며 히트를 기록해 나왔다. 한 가지 이채로운 점은 발표한 90%의 곡을 직접 작곡했던 신승훈이 단 한 번도 표절 시비에 놓이지 않는 완성도까지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신승훈은 지향점을 갖은 채 작품의 제작 능력과 가창 실력을 오랫동안 진화시켜 나오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올곧게 자리잡은 아티스트라 할 수 있겠다. 


신승훈에 대한 해외 아티스트의 리메이크 열풍

해외 아티스트와의 교감 속에서 신승훈의 음악성은 더욱 빛이 났다. ‘I Swear’로 빌보드 1위를 차지했고 1995년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팝 보컬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R&B 그룹 올 포 원(All 4 One)은 자신들의 3집 앨범 [On And On]을 제작하면서, 아시아에서 히트를 기록한 발라드 곡 중에서 한 곡을 번안하기로 했다. 

수많은 곡 중에서 그들이 어렵게 선정한 곡은 바로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였고, 이 곡은 ‘I Don't Wanna Cry’라는 타이틀로 수록되어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1996년 발표된 신승훈의 5집 [Shin Seung HunⅤ]에 수록된 ‘Your Song'은 당시 미국 R&B계의 유망주였던 존비(Jon B)가 선사했던 곡이다. 존비는 내한 당시 기내에서 ‘KBS 빅쇼’에 출연해서 노래하던 신승훈을 보게 되었고, 그의 목소리에 반한 존비는 결국 신승훈과 듀엣으로 이 곡을 녹음하게 되었다. 이 두 사례는 1980년대 초반까지 일부 번안곡으로 앨범을 채웠던 국내 가수들의 흐름과 정반대의 쾌거가 이루어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 외에도 벨기에 출신의 팝 재즈 그룹 시티즌 제인(Citizen Jane)은 ‘나보다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을 리메이크해서 ‘Martian Puppies’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으며, 대만가수 황품원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번안해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홍콩의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여명은 ‘가을빛 추억’을, 그리고 엽문휘와 이채화는 듀엣으로 ‘I Believe’를 리메이크한바 있다. 번외로 중국에서는 신승훈의 곡을 불법적으로 리메이크한 노래가 30곡이 넘는다고 하며, 그 판매량은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하지만 대략 700만 장 이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일본에서 유독 많은 활동을 벌여 나온 신승훈은 그의 일본 공연에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Yuhki Kuramoto)와 특별한 친분을 이어 나오고 있다. 이들의 인연은 해외에서 먼저 발표된 신승훈의 첫 번째 음반이었던 2007년 미니앨범 [Shin Seung Hun Winter Special-愛という贈りもの]에서 특별함을 더했다. 이 앨범에서 유키 구라모토는 ‘Have Your Self A Merry Little Christmas+When You Wish Upon A Star’를 연주했으며, 신승훈은 일본의 전설적인 그룹 오프 코스(Off Course)의 리드싱어 오다 카즈마사(Oda Kazumasa)의 ‘사요나라’를 리메이크해서 수록했다.


신승훈의 OST 참여와 뮤직비디오

신승훈은 2000년 MBC 드라마 <비밀>에 ‘너만을 위한 사랑’을 시작으로 9편의 드라마 OST에 참여했다. 그리고 2001년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수록된 ‘I Believe'를 히트시키며 영화 <연리지>와 <그 해 여름> OST에도 참여했다. 

2009년 이후 EP 앨범 [Love O' Clock]을 발표한 이후 앨범 활동이 끊겼던 신승훈은 2013년 SBS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 ‘너에겐 들리지 않는 그 말’로 참여하면서 정규 앨범 [Great Wave]의 발매를 예고했다.  

방송계에서는 “신승훈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면 스타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그 동안 제작된 신승훈의 뮤직비디오는 적잖은 신인 연기자들의 등용문으로 이목을 끌어 나왔다. 이처럼 신승훈이 자신의 음악의 결정체인 앨범 외에도 뮤직비디오까지 무게중심을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별이빛나는밤에’ 코너에서 ‘100편의 좋은 영화’를 소개한 바 있을 정도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신승훈은 자신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열정 역시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4집의 타이틀곡 ‘그 후로 오랫동안’에는 방송국 리포터로 활동하던 김지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웠고, 5집 타이틀곡 ‘그 후로 오랫동안’을 잇는 후속곡 ‘내 방식대로의 사랑’에는 일반인이었던 명세빈을 직접 캐스팅해서 주인공으로 출연시켰다. 


이후 6집의 타이틀곡 ‘지킬 수 없는 약속’은 300대 1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일반인 송수영을 발탁했으며, 7집의 ‘전설속의 누군가처럼’에는 노형욱과 수영선수 정유진을 출연시켰고, 후속곡인 ‘가잖아’에는 신인 조인성을, 그리고 ‘이별 그 후’에는 한지민을 주인공으로 맞이했다. 또한 비정규 앨범인 [The Legend-Special Album]의 타이틀곡인 ‘Christmas Miracle’에는 당시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근무하던 남상미를 출연시켜서 연예계에 공식 데뷔시켰다. 이후에도 신승훈의 뮤직비디오에는 김민종과 최자혜, 이혜상, 김효선, 이성규, 하휘동, 차예린, 강하니, 안지혜, 이요원 등이 출연하면서 뮤직 비디오에 대한 신승훈의 남다른 투자가 꾸준히 진행되었다. 

     

신승훈, ‘이후로도 오랫동안’ 함께 할 아티스트-2 -> https://brunch.co.kr/@floyd2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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