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정도 후에 외래를 가야 한다. 이제 외래는 일 년에 한 번 간다. 퇴원하고 처음 외래 주기는 일주일이었고 이주가 되었고 한 달이 되었고 두 달이 되었고 반년이 되었고 일 년이 되었다. 외래를 길어지는 것만큼 병과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것은 의사 선생님이 제대로 말해주지 않으니 모르겠다. 환자는 의사를 맹신할 수밖에 없다. 투병은 의사를 맹신하며 버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외래를 가는 동안은 투병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 나는 의사를 맹신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맹신하는 일은 자신의 무력함을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내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흘러간 시간 동안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조금은 퇴보하거나 발전했을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무력함을 인지하게 된 것과는 그렇지만 외래가 가까워지면 컨디션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 그렇다. 괜찮다고 생각하는데도 심장이 빨리 뛴다거나 평상시에 아무렇지 않아 하던 것들이 어떤 병적 징후로 느껴지기도 한다. 죽은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고 나는 겨울옷을 꺼내듯 추위를 생각하며 다시 투병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력한 마음으로 진료를 받고 나올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병적 징후 없음의 유지를 기약하며.
이번엔 평소보다 조금 더 짜증이 나고 있다. 다음 주 월요일이면 아버지의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고 그다음 주에는 내 외래가 있다. 아버지가 다시 암이라면 나도 그러지 않으란 법은 없다. 무서운 걸까? 무섭진 않다. 조금 지긋지긋할 뿐이다. 나는 담담하다. 공포스럽거나 어떻게 해야 하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지도 않다. 속이 조금 메스꺼울 뿐. 그래도 사전에 준비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병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아버지의 병은 아버지의 병이고 나는 나의 병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따뜻하고 애틋했나. 병은 다른 사람이 대신 아파줄 수 없다. 각자의 일상을 참견하는 것은 오지랖이라 생각한다. 아 조금 끔찍하다. 병이 일상이라니. 매번 생각하지만 이건 조금 끔찍한 것 같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평생 공포에 휩싸여 살아야 한다. 아무 일 아니다. 암이든 아니든 무력함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외래 주기가 늘어나는 것처럼 내가 무언가 하지 않아도 일상은 지속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