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외부적 요인으로만 결정되는 삶

by 조매영

엄마에게서 내가 어렸을 때 출근하는 아빠 바짓가랑이를 잡은 채 가지 말라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들이 아직 태어나기 전에 있던 일이라고 했다. 살려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은 것이 아니라 놀아달라고 함께 있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잡았던 시절이 있었다니 믿기 힘들었다.


사람은 행복보다 불행을 더 잘 기억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행복한 일보다 불행한 일이 적어서 그렇다고 덧붙이는 것도 봤다. 그렇다면 왜 그 반대의 경험을 한 나는 불행을 잊지 못하고 행복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당시에 나는 매일 집에서 이유도 모른 채 맞았다. 그나마 위안은 밖에서 아빠를 마주칠 일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연무기를 든 아저씨를 쫓아다니다 벽돌 지게를 짊어지고 오르막길을 오르던 아빠와 마주치고 말았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일하는 아빠를 본 것도 충격이었고, 아빠가 밖에서도 때리기 시작할까 봐 위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아빠가 바로 내 옆을 지나갈 때 걷어찰까 봐 질끈 눈을 감았었다. 아빠는 마치 내가 없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멀어지는 인기척에 눈을 뜬 나는 한참 동안 아빠가 지나온 길을 보며 숨을 돌렸었다.

그 날이 내 기억 속 아빠와의 관계 중 제일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된다. 맞지 않아서 불행하지 않았고 내게 행복이란 불행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 외에도 행복했던 날이 분명 더 있을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출근길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빠의 전화다. 내가 엄마에게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했던 것을 전해 들은 것 같다. 다정하게 내 건강 상태를 물었다. 내게 더 이상 겁박이 먹히지 않는 날부터 아빠는 다정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게 너무 싫었다. 자신만 행복하려고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집을 나온 이후 행복한 일상을 보냈다. 매일을 망각하며 살고 있어 행복했다.

그런데 왜 아빠는 전화를 한 걸까.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이라면 아빠는 분명 나를 때린 날들을 기억하지 못하겠지.


아빠는 분명 과거의 당신을 내가 잊기를 바라고 그런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면 아빠는 불행이 행복으로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거겠지.


정말 싫다.


아빠는 알리 없겠지. 내 행복은 당신의 외면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리 없겠지.


기억 너머에 있는 아기 시절의 나를 그려본다. 울면서 아빠 바짓가랑이를 잡았다는 너는 커서 아빠가 없어야 행복을 느낀단다. 내가 그 시절의 나를 믿기 힘들어하는 것처럼 그 시절의 나도 현재의 나를 믿지 못하겠지.


가끔 아빠를 보면 연민이 들 때가 있다. 그건 내가 아니라 아기 시절의 나인 것 같다. 아아. 그것도 나다. 나는 기억을 가진 순간부터 행복할 수가 없게 만들어진 존재인 것 같다. 거기다 이제 아빠는 자꾸 나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 끔찍하다.



매거진의 이전글이유가 없다면 만들어 주시는 것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