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시작(2019.11)
인천 국제공항에서 엄마를 찾는다. 분명 전화로는 공항에 도착했다는데 보이지 않는다. 공항과 엄마를 번갈아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걸었다. 이상하다. 아무리 중얼거려도 기름과 물처럼 공항과 엄마가 어울리지 않는 기분이다.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없을 것 같다. 수화기 너머 엄마는 마냥 신나 있다. 화가 났다. 엄마가 있다는 곳에 가면 없다. 다시 물어보면 다른 곳이다. 왜 엄마는 가만히 있는 법이 없는 걸까. 어릴 적 내가 그냥 길을 괜히 잃어버리던 것이 아니었다. 내가 누구 닮았나 했는데 엄마였던 것 같다. 내가 아니면 누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도 짜증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지 나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겨우 엄마를 만났다. 분홍색 등산 점퍼를 입고 있고 있었다. 유난히 튀어서 어떻게 못 찾았나 싶을 정도였다.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웃지 않았다. 나는 삐진 상태라고 속으로 되뇌었다. 말도 하지 않고 체크인을 위해 줄을 섰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엄마도 웃으며 따라 줄을 섰다.
주머니에서 여권을 꺼내려고 했는데 여권이 없다. 당황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화장실에 두고 나온 것 같았다. 엄마에게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하고는 급히 줄을 이탈했다. 엄마도 줄에서 나와 잠시 나를 기다리기로 했다. 나는 여유로운 척 걷다가 엄마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뛰었다. 다행히 화장실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 척 배를 만지며 다시 엄마 보고 줄을 서자고 했다. 엄마는 내 실수를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가까운 사람과 여행하면 많이 싸운다던데 엄마 한 번, 나 한 번, 시작부터 순탄치 않다.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로 하는 해외여행인데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첫 여행이었던 애인과 다낭 여행은 이렇게까지 불길하지 않았다. 즐겁게 출국해서 즐겁게 귀국했었다. 그래서 갑상선 암 치료가 끝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엄마를 대동한 것인데 쉽지 않다.
우울하면 단 것이라고 했지. 탑승 게이트 가는 길에 젤리 전문점이 있길래 엄마에게 젤리를 먹자고 했다. 알록달록하고 다양한 모양새에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맛은 없었다. 엄마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온갖 지인에게 전화했다. 아들이랑 다낭에 간다고 자랑했다.
엄마는 자궁에 혹이 생겨 드러내기 전까지 생리 날이면 빨갱이가 쳐들어온다고 했었다. 어릴 적에 동생들이 사우나에 가자고 보채면 엄마는 피곤한 표정으로 빨갱이가 쳐들어온다고 했었다. 월경을 빨갱이로 비유하는 것은 어디서 배운 것일까. 엄마는 베트남에 대해서는 쌀국수 정도밖에 몰랐다. 엄마가 매월 그렇게 말하던 빨갱이의 나라가 베트남이란 것을 알고는 자랑을 하는 걸까.
우리는 이제 탑승 수속을 했다. 비행기로 향하는 짧은 터널을 걸어가면서도 엄마는 연신 두근거린다며 신나 했다. 나도, 내 심장도 분명 엄마에게서 나온 것이 확실하다. 엄마의 두근거림이 내 심장을 자극하는 것 같았다. 분명 난 별 느낌 없었는데, 나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옆을 걷다 보니 덩달아 신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