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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Feb 26. 2021

함께 아프자고 카톡이 왔다.

 22살, 네이트 판에 백혈병 투병기를 연재할 때 카톡도 공개했었다. 투병을 응원하는 카톡만큼 아픈 사람이거나 아픈 사람의 주변인 카톡도 많이 왔었다. 


 카톡을 보내기 전 날에 암 판정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카톡을 주고받으며 지내다 갑자기 암에 걸린 사람도 있었다. 아픈 사람들과 카톡을 주고받을 때면 병동 복도를 걸었다. 복도를 한 번 왕복하는 동안 답장을 겨우 하나 보냈다. 나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기를 바랐다. 그들도 내 투병이 거짓말이기를 바라고 있진 않을까. 복도를 왕복할 때마다 그들의 몸 상태와 마음 상태는 선명하게 다가왔다. 몇 번이나 복도를 왕복했을까. 지쳐 병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눈물이 나왔다. 눈을 감으면 그들도 어느 병실에 누워 있을 것이 보였다. 나는 왜 내가 아픈 것 밖에 모르는 걸까. 아픈 사람은 아픈 사람이 제일 잘 이해한다고 누가 그랬나.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들도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해할 수 없어서 더욱 절실하게 서로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카톡을 주고받던 독자 중 한 명은 여태 모은 헌혈증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었다. 낯가림이 심해 고민을 했지만 헌혈증을 꼭 직접 주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 절실했다. 거절하기 어려웠다. 병동 앞에서 만나 헌혈증을 받았다. 잠깐이지만 그녀의 이야기도 들었다. 어릴 적에 오빠가 백혈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헌혈증을 보니 모두 한 사람의 이름이었다. 오빠의 꿈이 경찰이었다고 했다. 오빠보다 나이가 많아진 지금, 자신은 지금 경찰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녀가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가 끝나자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녀가 모은 헌혈증에는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고 그녀가 보는 내게는 오빠의 병이 있었다. 그래서 조금 슬퍼졌다. 애초에 투병기도 누구를 위로하려고 쓴 것이 아니었다. 심심했고 병원 생활이 신기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마음을 추슬렀다. 내가 그녀의 오빠가 아닌 것처럼 그녀도 그녀의 오빠가 아니라는 것을 이번 만남으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좋은 경찰이 될 거라고 진심으로 응원했다. 


 아기가 중환자실에 있다는 친구의 카톡도 있었다. 친구는 아기 사진을 자주 보내주었다. 아기는 온갖 호스를 낀 채 누워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매번 사진 바로 뒤에 아기의 성격부터 외모까지 하나하나 나열하며 자랑하는 친구는 해맑았다. 처음엔 아이 사진을 보면 가슴이 저렸는데 친구 덕분에 온갖 호스보다 아기가 먼저 눈에 들어올 수 있었다. 정말 아기는 귀여웠고 똘똘해 보였다. 친구는 자신이 중환자실 보호자 중에 제일 막내라고 했었다. 나도 병동에서 막내라고 대답했었다. 우리는 각자의 공간에서 막내라 좋은 점을 나열하며 웃었다. 오늘도 맛있는 것을 다른 보호자에게 받았다며 친구는 자신이 복이 많다고 했다. 내게 복을 조금 나눠 주겠다고 했다. 나는 웃으며 아기도 나도 네 복 덕분에 금방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게 카톡의 끝이었다. 다음 날 친구의 아기 사진이었던 프로필이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친구는 더 이상 내게 카톡을 보내지 않았다. 


 이제는 투병기를 연재하던 시절 카톡을 주고받던 모든 이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 무소식은 희소식이 아니다. 나는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연락을 주고받았던 모든 이들이 자신의 건강함이 지난날 연락했던 모든 사람들의 건강함이라 생각해주면 좋겠다. 무소식이 무소식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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