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3월이었다. 어린이집 가정통신문을 들고 왔을 뿐인데 엄마는 인상이 구겨졌다. 다음 날 엄마는 어린이집 대신 회사에 데리고 갔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엄마를 따라갈 수 있어서 좋았다.
엄마는 작은 회사에서 경리로 일 했다. 엄마가 일 하는 동안 나는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귀여웠는지 과자를 쥐어줬는데 엄마는 이가 썩는다고 먹지 못하게 했다. 내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자 엄마는 발이 닿지도 않는 어른 의자에 앉혔다. 종이와 펜을 주면서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온갖 동물을 그려댔다. 병아리도 그리고 고양이도 그리고 사자도 그렸다. 오고 가며 회사 직원들은 내 다양한 동물들을 강아지를 그렸냐고 물었다. 미웠다.
엄마는 한참 일에 집중하다 조금 여유가 생겼는지 내가 낙서를 하는 것을 지켜봐 줬다. 오늘 어린이집에 가지 않은 이유는 생일 파티를 해서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생일을 기념하는 일은 미신이라고도 해줬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마를 그렸다. 동그란 얼굴 동그란 눈 동그란 볼 그리고 나니 호빵맨 같았다. 엄마에게 엄마라고 말해주었다. 엄마는 웃었다. 종이와 펜을 달라고 했다. 엄마 호빵맨에 드레스를 입혔다.
큰 치마가 인상 깊은 드레스였다. 치마 주름이 예뻤다. 어린 눈으로 봐도 장식이 과하지 않아 보였다. 아름다운 드레스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드레스냐고 한다면 27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보다 아름다운 그림이나 드레스를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엄마도 그림이 마음에 들었는지 흡족한 표정으로 나를 봤다. 나는 동경하는 눈으로 엄마를 봤다. 젊은 엄마가 예뻤다. 그제야 내가 그린 호빵맨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얼굴을 그렇게 밖에 그릴 수 없어서 미안해졌다. 눈물이 났다.
엄마 손을 잡고 퇴근하는 길 나는 버스에서 한참 동안 엄마와 내 합작품을 봤다. 그렇게 좋아하던 벨 누르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어느새 우르르 올라타는 사람들 사이에 파묻혔다. 엄마가 보이지 않게 되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예술작품을 만나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러다 우르르 내리는 사람들에 섞여 내렸다. 돌아보니 낯선 풍경이었다. 엄마도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버스를 보니 문이 닫히고 있었다. 그림이 구겨지는 것도 모른 채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버스가 출발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뛰었다. 엄마. 엄마. 엄마. 손에 쥔 종이가 거추장스러워 버렸다. 뛰었다. 엄마. 엄마. 엄마.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겠다는 듯이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금방 버스가 멈췄다. 엄마가 내렸다. 엄마를 안고 울었다. 무서워서 울었다. 무서움이 가시자 버린 종이가 생각나 울었다.
엄마는 다시 그림을 그려주지 않았다. 몇 번을 졸라도 자신은 그림을 못 그린다고 손사래 쳤다. 그날 이야기를 해줘도 엄마는 그림을 그려준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드레스를 입어본 적도 없는데 드레스를 왜 그렸겠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드레스를 입어보지 못했으니 드레스를 그리지 않았을까. 예술은 구체적이게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기지 않던가.
엄마는 생일을 기념하지 않으니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다.
그날 엄마가 그려준 그림은 내 생에 최초의 생일 선물이었다.
최초로 접한 예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