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 비치에서 여행의 반을 성공했다.

2019.11

by 조매영

셔틀버스를 타고 안방 비치에 도착했다. 비수기라 그런지 사람이 많진 않았다. 우리는 안방 비치를 들어가기 전 상점가를 들여다봤다. 엄마는 베트남 전동 모자인 농을 마음에 들어했다. 나는 거추장스러워 별로라고 생각했다. 엄마 것만 상점 주인과 흥정을 해서 5만 동에 샀다. 엄마는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선물 받은 것처럼 좋아했다. 내가 귀찮거나 싫은 것의 반대로 행동을 하면 엄마가 좋아하겠구나 싶어 씁쓸했다.


올드타운에는 사람이 많았다. 풍경을 보러 온 건지 사람을 보러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현지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았고 외국인 중에 특히나 한국인이 많았다. 엄마는 사람이 많은 것이 좋다고 했지만 삼일 연속으로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 것은 내게 무리였다.


우리는 해변가를 따라 걸었다. 걸을수록 놀거나 쉬는 사람의 수가 적어졌다. 사람이 완전히 없어질 즈음에 우리는 멈췄다. 촌스런 파란색의 선베드가 보였다. 우리는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종업원이 메뉴판을 들고 왔다. 사진을 보며 우리는 메뉴를 시켰다. 음료는 나는 맥주를 엄마는 콜라를 시켰다. 엄마는 입맛을 다셨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치료가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맥주를 보고 입맛을 다시는지. 기가 찼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나.


먹다 말고 파도를 봤다. 바람이 세서 그런지 거칠었다. 자연을 보며 감흥을 느끼는 사람이 부러운 적이 있었다. 나는 아무리 봐도 바다는 바다였다. 바다가 상징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 바다는 모성의 공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만물을 품은 양수라고 한다. 진부하지만 아직도 가끔 쓰이는 표현이다. 지긋지긋하다. 바다를 그냥 바다로 둘 수는 없는 걸까. 비유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개발도 자연은 그냥 자연으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거기 있으니까 거기 있기를 바라는 것이 이상한 건가.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조금 더 편해지겠다고.

이제는 오히려 그냥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더 낯설고 세련된 시대가 된 것 같다.

엄마는 선베드에서 일어나더니 농을 썼다. 발을 적시고 싶다며 바다 쪽으로 걸었다. 나는 위험하다며 말렸지만 엄마는 말을 듣지 않았다. 선베드에 누워 맥주를 홀짝이며 폴짝거리는 엄마를 보다 잠깐 잠에 들었다. 눈을 뜨니 엄마가 홀딱 젖어 있었다. 갑자기 억센 파도가 밀어 쳐서 넘어졌다고 한다. 어떻게 아무도 안 도와주냐고 툴툴거렸다. 내가 나무라기 전에 혼자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해 할 말이 없었다.


무릎을 보니 많이 까졌다. 여행 카페에 같은 호텔에 숙박하고 있는 사람 중 구급약이 있으신 분 있냐는 글을 올렸다.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약국을 검색했는데 배달이 되는 곳은 일요일 영업시간이 지나 있었다. 호텔로 돌아가자고 하니 엄마는 못내 아쉬워했다. 엄마는 마흔이 넘어 바다를 처음 봤다. 바다 앞에서 엄마는 아직 십 대 초반이라 그런 것이라 이해하기로 했다.


호텔에 도착해 데스크에서 엄마 무릎을 보여주며 약을 받았다. 소독약을 바르니 그제야 쓰라린지 엄마는 인상을 쓴다. 모자는 그래도 잘 지켰네라고 말하니 엄마는 휴대폰은 젖었지만 모자는 지켰다고 웃었다. 누구 엄만지 참. 외국이다 보니 내게 의지할 것들이 많아져 젊다 못해 어려진 것 같았다. 내가 입원할 때에도 엄마가 입원할 때에도 슬픈 표정이 기본 베이스였다. 이제는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좋았다. 다치긴 했지만 여행의 반은 성공한 것 같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엄마와 여행 중, 나 혼자 밤 산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