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여행 중, 나 혼자 밤 산책을 했다.

2019.11

by 조매영

엄마를 재우고 호텔 근처를 걸었다. 때때로 지도를 확인하며 너무 먼 곳을 온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휴대폰을 꺼낼 때마다 호텔을, 엄마를 중심으로 공전하는 행성이 된 것 같았다. 휴대폰을 끌까 고민했다. 궤도를 이탈한다 해서 재밌는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다. 휴대폰을 그냥 두기로 한다. 다른 행성과 부딪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간판의 조명이라던가 음악 소리를 이정표 삼아 걸었다.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곁눈질하며 걸었다. 외곽 동네다 보니까 어디에도 호객꾼은 없었다. 여느 여행기에 나오는 사람처럼 내가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저 자리에 앉아 손짓 발짓을 하며 놀고 있지 않았을까. 평행 세계에 있을 적극적인 나를 생각한다. 생각만으로도 신난다. 음악 소리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보다 크다. 모두 말보다 몸짓으로 대화하는 것 같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곁눈질을 거두고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피했다.


가로등도 없고 간판도 없는 골목에 다다라서야 멈춰 섰다. 바닥에 잠시 주저앉았다. 침이나 담배꽁초가 엉덩이 밑에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지만 이미 주저앉은 상황이라 개의치 않기로 했다. 어둠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다를 것이 없구나. 어둠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그 색체가 결정된다. 내 안에서 비롯된 어둠은 비루하고 좁지만 포근하다. 휴대폰을 꺼낸다. 그 조그마한 불빛으로도 환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밝음은 이 만큼이다. 지도 앱을 켠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호텔 근처다. 마음은 많이 걸었지만 몸은 생각보다 많이 걷지 않은 것 같다.

휴대폰만 보며 걸었다. 깜빡이는 점이 나라니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나는 낯선 땅에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휴대폰 속 나는 어느 곳에서도 당황하거나 멈추는 법이 없다. 순탄하게 깜빡이는 나는 호텔 앞까지 다다른다.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나 싶다. 원래 이게 여행자의 보편적인 밤 산책인 걸까. 글로 여행을 배운 나는 조금 불안하다. 평행 세계에 나는 고주망태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가벼운 몸싸움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나야, 나 대신 조금 더 추하고 조금 더 신나게 살았으면 좋겠다. 지루함은 내가 이 세계에서 맡고 있을게.


방에 들어오니 엄마는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샤워를 하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남은 여행경비를 확인하고 코를 고는 엄마를 본다. 목에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더워 죽겠는데 스카프를 두르고 다닌 이유다. 수슬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조금 슬퍼지려고 하는데 엄마 코 고는 소리가 자꾸 방해한다. 우울한 풍경을 감상하는데 짱구가 엉덩이 춤을 추고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다. 고개를 저으며 내 침대로 가 눕는다.

언젠가 엄마한테 왜 집을 나가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우리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내가 그렇게 맞아도 집을 나가지 않았던 이유에 엄마가 집을 나가지 않았던 것이 컸다. 이래나 저래나 태양 같은 사람이다.


잠이 오지 않아 여행책을 꺼내 읽으려다 그러지 않기로 한다. 마음가짐까지 여행책을 보고 배우려는 것 같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여행책을 가방 깊숙이 넣어둬야지. 나 홀로 여행도 아니고 엄마가 중심인 여행이다. 마음가짐을 고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엄마다. 일탈도 평행 세계의 내게 맡겨야겠다. 나는 참 떠넘기기 잘하는 것 같다. 평행 세계의 내가 나를 만난다면 왜 자기한테 다 떠넘기냐고 멱살부터 잡을 것 같다. 어쩌겠나. 내가 저 태양을 공전하며 생기는 마음속 밤과 낮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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