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빠는 림프종에 걸렸었다. 나는 아빠가 입원해 있는 동안 면회를 한 번 밖에 가지 않았다. 아빠는 약해 보였다. 뼈밖에 없었다. 오줌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성질만 남아 있었다. 더 이상 위협적이지 않았다. 나는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아빠가 옥상에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에 엄마는 의사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당시에 나는 항상 턱이 얼얼했다. 일진들에게 많이 맞았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일진 패거리에서 서열을 정하는 싸움을 포기하고 나서부터 그 아이들은 나를 매번 찾았다. 돈을 뜯진 않았다. 돈을 뜯는다 해도 어차피 내게는 뜯길 돈도 없었다. 나는 무기력했고 무력했다. 그들은 내게 어떤 굴욕을 주고 싶어 안달이나 있었다. 아빠가 림프종에 앓아서 너희와 이러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그들은 조롱하기 바빴다. 골목에서 욕을 먹고 복부를 맞고 뺨을 맞았다. 별로 굴욕감은 들지는 않았다. 그냥 주먹을 몇 번 쥐었다가 풀었다. 버티는 일은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그냥 조용히 그 시간이 끝나기만을 빌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죽었다 생각하고 한 명을 때리면 마음은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때릴 아이의 병원비나 여러 명에게 맞을 내 병원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엄마는 아빠를 병간호하기 위해 병원에 있었다. 집에는 나와 동생들 밖에 없었다. 동생들과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는 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빠가 없어도 매일 온몸이 쑤셨다. 맞는 것이 내 운명인 건가 싶었다. 아빠가 집에 있을 때보다 아프진 않았지만 서글펐다. 동갑내기에게 저항 한 번 못하고 맞는 내가 싫었다. 싫어도 어찌할 길이 없는 상황이 싫었다.
방에 누우면 일진 패거리에서 나를 유난히 싫어하던 아이를 생각했다. 그 아이가 괴롭히던 아이를 돕지 않았으면 엮이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하지만 그때가 다시와도 나는 그랬을 것이다. 나는 후회의 천재니까.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니까.
요즘 학교폭력이 이슈다. 최근 나를 유난하게 싫어하던 친구의 페이스북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서는 마음을 다잡았는지 서울대를 다니고 있었다. 그가 올린 글을 하나하나 읽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글이 다수였다. 복수심이 일었다. 내 복부를 뺨을 때리던 손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한다는 게 가증스러웠다. 나는 그 아이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많은 정보가 모였다. 정보를 모을수록 분노에 휩싸였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가해자에겐 과거지만 피해자에겐 무한한 현재다. 나도 잊었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복수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기존에 쓰던 글을 지우고 새로이 이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나는 두려웠고 분노했으며 우울했다. 그리다 끝내 자책했다. 자책으로 끝내선 안 된다. 그래서 사족까지 붙인다. 언젠가 만나겠지. 세상은 좁으니까. 글을 쓰고 나니 복수고 뭐고 별생각 없다. 그냥 올바른 소리를 하면 과거의 자신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