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게 투병 식단 중 최고는 스팸이었다.

by 조매영

항암 휴식기에는 할 일이 없어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일과의 대부분이다.


채널을 돌리다 자연식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됐다. 말기 암이었는데 자연식으로 회복해 자연식 전파자가 되었다는 스토리였다.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자연치료를 하겠다며 퇴원한 아저씨가 생각났다. 살아계실까. 퇴원하신 이후 소식을 알 수 없다. 항암도 그렇고 자연치료도 그렇고 생존자는 소수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말기 암 환자를 대상으로 희망 장사만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텔레비전을 껐다.

녹차 먹은 돼지라던가 유황오리가 생각난다. 먹은 것에 따라 육질이나 맛이 달라진다는데 사람이라고 다를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안 되겠다. 맛없는 것은 못 참겠다.


안방 책꽂이에 못 보던 책이 한 권 있는 것을 봤다. 암환자에게 좋은 음식이라는 책이다. 웃겼다. 정작 엄마는 암환자에 좋은 음식을 해준 것이 없었다. 해준다고 해도 내가 먹지 않았을 테지만. 엄마의 고민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버리라고는 하지 못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3분 카레와 라면 그리고 스팸을 주로 먹었다. 항암은 좋은 육질이 아니라 체력이 필요했다. 체력은 먹어야 생겼다. 내게 아플 때 좋은 음식은 건강한 음식이 아니라 입에 맞는 음식이었다. 어패류처럼 정말 위험한 것이 아니라면 입에 맞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좋았다. 체력은 정신력과도 연관이 있으니까. 맛있는 것만 먹으면 두 배로 버티기 좋아지는 거네. 맛있는 것 최고! 방송에서 만약 나 같은 사람이 나왔다면 욕을 한 바가지 먹었겠다.


엄마가 비트를 요구르트에 갈아 가지고 왔다. 비트가 혈액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혈액의 색과 같아서 그런 걸까. 설득력이 떨어졌다. 먹기 싫다 거절하다 못 이긴 척 먹었다. 이것까지 거절하면 너무 슬퍼할 것 같았다. 맛이 좋았다. 엄마에게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암 투병은 운이다. 동전 던지기처럼 죽음과 삶이 수시로 뒤집어지며 떨어지는 것이다. 체력은 동전의 체공 시간을 늘려주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여러 운이 비집고 들어 올 거라 기도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신이 도왔다고들 하는데 나는 엄마의 사랑이 나를 구원했다 말하고 싶다. 그냥 운이 좋아서 투병이 잘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엄마 사랑도 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었으니, 텔레비전 속 자연식으로 회복했다는 말처럼 주장해도 되지 않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는 학교폭력 피해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