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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

by 조매영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기 한 달 전에 쓴 시를 찾았다. 군대에 있었고 심적으로도 많은 고립감을 느꼈던 시기였다. 홈페이지가 리뉴얼되어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남아 있었네.


그동안 시대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이제는 이런 시는 쓰진 않을 것이다.



쟈넷, 여행은 즐겁니?


어둠이 검정을 밝히는 밤, 누워 있는 쟈넷과 사진 속 분칠한 쟈넷, 커튼의 주름들 같은 간격을 바람이 움켜쥐듯 좁혀 놓은 밤, 쟈넷 축하해 당신 혼자 다소곳하게 누워 있을 공간이 생겼다니, 인사 나온 사람들은 가로등처럼 고개를 숙이고도 쟈넷의 여행길 참 잘 밝혀 준다. 삐져나온 시트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쟈넷, 더 이상 오뚝이는 없어, 몇 만 원을 장미꽃마냥 받아들고 일어나지 않아도 돼, 두 손 가득 솜사탕 같은 흰 국화를 들고 날아가는 쟈넷, 익숙해진 외국어도 낯설어진 모국어도 들어낸 자궁에 꽁꽁 동여매고 따뜻한 세계로 들어가는 쟈넷, 때 절은 날개 펄럭이며 구름과 동화되는 쟈넷, 빗물이 아니라 보름달이 될 생각은 없니 쟈넷, 순환은 지겹지 않니, 고향땅 누이는 보름달을 보며 백 달러를 곪은 배처럼 움켜쥐고 있다는데 소문은 날아도 날아도, 오물거리는 서툰 외국어처럼 쟈넷, 너는 알아들을 일이 없네, 갈피를 못 잡도록 서로 다른 쟈넷들 사람들 눈에서 고개를 내미네, 김씨 할머니가 송금해 준다던 돈들처럼 너의 소식 알 수가 없네, 쟈넷, 혼자 가는 여행은 즐겁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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