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Apr 10. 2021

통증 질량 보존의 법칙

 볶은 김치를 먹었다. 김치를 먹는 건지 자해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호중구 수치는 오를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구내염도 좋아질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오백 원 크기의 구내염은 닿지 않게 음식을 씹으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일상이 고통인지 고통이 일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열이 나지 않는 것에 감사했다. 아프다고 무조건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병원 생활을 하면서 배웠다. 혈액암 병동에 죽음은 아플 새도 없이 오는 경우도 많았다.     


 누군가 공고 요법은 첫 항암으로 억제한 암세포를 더는 나대지 못하도록 누르는 치료라고 했었지. 병동 복도를 걸으며 20년 만에 같은 백혈병이 걸려 병원에 입원한 옆 병실 아저씨를 생각했다. 치료는 지우는 것이 아니라 누르고 막아두는 것이 아닐까. 찌부러진 채 이를 갈고 있을 암세포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오래전 심장 수술하고 잘 지내왔다던 형이 항암 이후로 심장에 다시 문제가 생겼다. 형뿐만 아니라 지병이 있었던 사람들은 문제가 생겼다. 항암제가 힘이 넘쳤나 보다. 힘 조절을 못하고 너무 세게 누른 것 같았다. 막아둔 곳이 터지는 것을 보니.     


 나도 탈이 났다. 좌욕을 빼먹은 적이 없는데 3년 전 수술했던 치루가 재발한 것이다. 바이탈 체크를 할 때마다 항문도 보여야 했다. 보이고 싶지 않았다. 감염의 원인이 될 수 있어 어쩔 수 없었다. 컨디션이 너무 좋았다. 차라리 몸이 아팠다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이렇게 부끄럽지는 않았을 텐데.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컨디션이 좋으니 별생각을 다 한다.   

  

 수술 날을 잡았다. 호중구 수치가 오르고 있었지만, 일정 수치를 달성하지 못하면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고 했다. 폐활량 강화 운동을 했다. 공을 모두 띄우기 전에 내가 먼저 숨이 차 죽을 것 같았다. 다행히 호중구 수치가 일정 수치를 달성했다. 수술은 부분 마취로 진행되었다. 침대에 엎드린 채 수술을 받았다. 전신마취를 받았다면 몸에 부담이 많이 갔을 것이다. 그래도 전신마취에 대한 마음이 간절했다.      


 수술 후 화장실을 가는 것을 제외하고 누워만 있었다.

 다큐멘터리에서 지친 모습이 역력한데 일을 그치지 못하는 노인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PD는 노인에게 물었다. 나이도 있으신데 왜 그렇게 힘겹게 일하시냐고. 나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것이 아니겠냐 생각했었다. 노인은 가만히 있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먼저 간 남편이, 아들이 생각나 죽을 것 같다고. 움직여야 그나마 괜찮다고 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병동에 온갖 소리가 들렸다. 통곡, 고함, 비명, 그것을 가로지르는 분주한 발걸음 소리들.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써도 소리는 그칠 줄 모른다. 자꾸 눈물이 났다.

 호중구가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호중구가 올랐다는 것은 죽을 걱정을 조금 덜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면역력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보호해줬다.     


 마음에 고인 여러 소리들을 털어내기 위해 병동이라도 걷고 싶지만 엉덩이가 용납하지 않는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했던가. 병원에는 통증 질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 것 같다. 화장실은 지옥이었다. 항문에 구내염이 있는 줄 알았다.

 뭐든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지만 사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병원에서는 따분해지고만 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