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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14. 2021

유가족과 기억으로 카드놀이를 했다.

 우리 셋은 각자 다른 칵테일을 주문했다. 어두운 조명과 차분한 연주곡은 마음에 조그마한 방을 만들어 주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중에, 칵테일이 나왔다. 우선 칵테일을 조금 마셨다. 내 것은 과일 맛이 강해 좋았다. 좋은 것을 알려주고 싶어 진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는 자신 앞에 놓인 칵테일의 장점을 나열했다. 말로는 부족했다. 서로의 칵테일을 조금씩 맛봤다. 우리는 서로에게 숨긴 맛을 음미했다.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맛이 느껴졌다. 숨긴 것이 아니라 설명하지 못한 것이었다. 장점이라고 하기에는 불편하고 단점이라고 하기에는 크게 나쁘지 않은 느낌. 우리는 왜 설명하지 못했는지 알겠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은밀하고 조그마한 방을 공유하게 된 것 같았다.     


 우리는 기억을 카드처럼 펼쳐 놓았다. 그녀들은 그중 한 장을 들었다. 장례식장이었다. 내 앞에 있는 이들은 고인의 딸들이었다. 나는 장례식장에 없었다. 사모님이 장례식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충격받을 것에 대한 배려였다. 그녀들은 장례식장 풍경을 나열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왔다고 했다. 우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나는 정말 아저씨가 사랑이 많은 분이라고 맞장구쳤다. 나도 기억을 한 장 들었다. 병원이었다. 아저씨는 누구보다 유쾌하게 병과 싸웠다. 그것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사람의 컨디션도 챙겼다. 그녀들은 당시에 미성년자였다. 학교 때문에 병원에 거의 오지 못했었다. 환자복을 입었는데도 건강해 보이던 모습을 그녀들은 거의 못 봤다고 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기억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똑같은 기억에 손이 갔다. 아저씨가 죽음을 예감하고 있을 때였다. 치료를 조금 더 해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라는 우리의 아쉬움과 아저씨가 그간의 쌓인 고통에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에게 정적이 찾아왔다.


 정적은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던데 아저씨가 지나간 것이 아닐까. 정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 우리를 보고 놀라서 자리를 피하신 것 같았다. 우리에게 아저씨가 더 이상 나이 들지 않는 것처럼, 아저씨에게도 우리가 나이 들지 않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칵테일을 마저 마시며 본격적으로 아저씨를 함께 그리워했다. 그 자리에 연민은 없었다. 


 언젠가 아저씨와 우리가 만나면 아저씨와 우리는 마지막 본 것만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아저씨의 나이를 역전하게 되어도 아저씨 눈에는 미성년자인 그녀들과 항암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보일 것이다. 우리 눈에는 아저씨가 건강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연주곡이 꺼지고 우리가 공유하던 방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문 닫을 시간이라고 한다. 아저씨의 죽음도 잠시 문을 닫은 시간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걱정할 것 없다. 금방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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