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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30. 2021

병원에서는 따분해지고만 싶어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슬픈 일이 없었다. 병동에는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고 죽을 것 같은 사람도 없었다. 눈물이 통곡하는 것처럼 쏟아지니 신기했다. 간호사실 앞에 가서 눈물을 자랑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항암 부작용으로 생긴 안구 건조증이라고 했다. 나는 부정했다. 주치의 선생님이 놀려서 운 거라고 했다. 주치의 선생님은 웃으며 사뿐히 내 드립을 무시했다. 안약을 넣으며 괜찮을 거라고 했다. 나는 선생님 때문이라 주장했지만 듣는 체도 해주지 않았다. 따분함은 넉살을 단련시켜 주었다.  




 가만히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날. 의사 가운은 입고 있지만, 어리숙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사람에게서 인터뷰를 요청을 받았다. 의대생이었다. 발병 증상과 현재 컨디션 따위를 물었다. 답변에 대한 궁금증보다 나에 대한 연민이 더 느껴졌다. 인터뷰가 끝나고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 비치는 옅은 슬픔이 보였다. 수업 과제였던 것 같다. 심심한 터에 나는 재밌었는데 의대생에겐 도움이 됐을까. 내가 괜찮다 못해 권태로워 보여 실망하지 않았을까. 의사가 될 때 즈음이면 얼굴에 옅은 슬픔도 남아 있지 않겠지.     



 

 지겹다는 표정으로 병동 복도를 걷는다. 다른 사람도 하나 둘 나와 병동 복도를 걷는다. 병실 안은 바쁜 사람들 천지다. 병실에서 흘러나오는 앓는 소리, 기침소리, 비명이 풀처럼 돋아나 발목을 잡는다. 그것들을 온몸으로 헤치며 걷는다. 때때로 풀독이 올랐는지 마음 한편이 아릴 때도 있다. 그래도 걷는다. 얼핏 보면 침묵시위를 하며 행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따분함을 만끽하며 걸었다. 사정을 모를 누군가의 눈에는 죽음에 저항하는 혁명단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죽음까지 생각할 용기는 우리에게 없었다. 우리는 평온한 하루가, 따분함이 좋아 걸었을 뿐이다. 우리는 매일 따분해지기 위해 온 마음을 다했다. 따분하지 않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러지만 않기를 바라기에도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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