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일기

닮은 그러나 너무도 다른

by 조매영

카르투시오회 수도원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곳의 수도자들에겐 침묵과 고독이 하나님에게 이르는 지름길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그들의 삶이 낯설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절제된 삶은 혈액종양내과 병동 속에서의 삶과 닮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산책길은 그들이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간이다. 나는 왜 거기서 병동 복도를 산책하던 날들이 떠올랐던 것일까.


산책 중 젊은 수도자가 늙은 수도자에게 자신은 수도원에서 눈을 감는 날까지 충실하게 살도록 매일 기도 하고 있다 말했다. 늙은 수도자는 젊은 수도자에게 죽는 연습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늙은 수도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며 살아가고 있냐고 물었다.

젊은 수도자는 자신은 매일 3초 후에 죽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3초 후에 죽는데 어떻게 남을 미워하겠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나도 당장 재발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치료가 끝난 후 몇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래도 싫은 사람은 싫고 미운 사람은 밉다.


언젠가 신부가 된 군대 선임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천주교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누굴 미워하는 상태로 새롭게 시작하기는 어렵겠지.


내게 죽음은 죽음이다. 새로운 시작은 생각도 않는다. 병동에서 잘 죽는 것보다 1초라도 더 살고 싶었다. 그 누구도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 것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자의적으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도 자의적으로 아팠다면 그들과 같은 태도로 투병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유롭게 작별을 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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