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내게 불행은 일상이었다. 내게 행복은 불행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불행이 덜 느껴질 때 나타났다. 부모와 어렸을 적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엄마는 내가 좋았던 기억을 풀어놓아도 죄스러워했다. 내가 그나마 행복을 느꼈던 순간에도 엄마는 불행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7주기이다.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뉴스를 안산에서 봤다. 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보며 안심하고 바지락 살을 발랐다. 껍데기를 통에 넣으며 우리는 내일까지 해야 할 과제를 걱정했다.
임시분향소에 처음 갔을 때는 동행인 없이 혼자 갔다. 내가 과제를 걱정하고 있는 순간 아이들도 당연히 내일 있을 일을 생각했을 것이다. 구출이 당연하다 생각했겠지.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봤다.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 분명 길에서 마주치거나 버스를 같이 탔던 적이 있었을 아이들.
아이들의 내일보다 자신의 오늘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다. 내 병보다 자신에겐 손톱을 깎다 찝히는 것이 더 아프고 중요한 일이라고 했던 사람이 생각났다. 권력이 있는 그들도 그랬겠지. 아이들의 죽음보다 자신의 손톱 거스러미가 더 신경 쓰이고 괴로웠겠지.
아직도 세월호에 관한 많은 것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는데, 권력자들은 그만 거스러미를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해결되지 않은 일에 집중해주면 좋겠다. 이제라도 괴로운 사람들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유가족도 티끌만큼이라도 불행이 덜 느끼는 순간을 가지게 하고 싶다. 그만 아이들에게, 유가족에게 내일을 돌려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