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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구이를 먹고 불행을 교통정리했다.

by 조매영

처음으로 혼자 있을 때 고등어구이를 배달시켜 먹었다. 애인은 생선을 좋아한다. 애인과는 생선 구이를 몇 번 시켜 먹었지만 혼자는 처음이었다. 생선 살을 하나하나 발라 놓은 다음에야 안심하고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애인에게는 생선 뼈를 바르는 것이 귀찮아서 생선을 찾아 먹지 않는다고 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고등어는 맛있었다. 같이 온 공깃밥도 모자라 냉동밥도 하나 해동시켰다.


시간이란 것이 참 신기하다. 혼자서는 영원히 먹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어릴 적에는 생선을 참 좋아했었다. 아빠 눈치가 보이면서도 꼬랑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빠가 갑자기 숟가락을 던지면 골목으로 도망쳤었다. 골목에 쭈그려 앉아 손끝에 달라붙은 생선 비린내를 맡으며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었지. 생선 비린내는 묘하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다.


생선을 싫어하게 된 날을 아니 정확하게는 무서워하게 된 날을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아빠가 본격적으로 일을 하지 않게 된 날이었고, 엄마가 보험회사를 그만둔 날이었다. 집에 반찬도 떨어져 엄마는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길이 없는, 냉동실 깊숙이 있던 생선을 꺼내 구워줬다. 여느 날처럼 나는 꼬랑지를 잡고 뜯어먹었다. 이상했다. 생선에게서 나면 안 되는 맛이 느껴졌다. 평소와 다르게 천천히 씹어봤다. 더욱 이상했다. 먹는 것을 잠시 멈추고 생선을 봤다.


생선 안에는 반이 사라진 바퀴벌레가 있었다.


헛구역질이 나왔다. 토를 하고 싶었는데 토가 나오지 않았다. 아빠는 또 숟가락을 던졌다. 숟가락이 이마에 명중했다. 아팠다. 아팠지만 아픈 게 문제가 아니었다 토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반응이 없자 아빠는 상을 엎으려고 했다. 울면서 뛰쳐나갔다. 헛구역질을 아무리 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골목에 쭈그려 앉아 계속 헛구역질을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엄마도 그 날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 날 이후로 엄마가 구워준 생선을 먹은 기억이 없다. 엄마는 잘못 없었다. 생선에도 잘못이 없었다. 포식에 눈이 먼 바퀴벌레가 잘못했고 가난이 잘못이었다. 사실 아빠가 제일 문제였다.


가시를 정리하고 나니 손에서 생선 비린내가 올라온다. 코에 가져가 냄새를 맡아본다. 이제는 마음의 안정을 주지는 않는다. 예전처럼 도망갈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비누로 아무리 씻어도 냄새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내게 안정을 주었던 순간을 잊지 말라고 끈질기게 매달리는 것 같았다. 어린 날의 나를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과거를 버리고 미래를 살라는 말이겠지. 모르겠다. 내가 어찌 나를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기억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기억해줄까. 가끔 생선 구이를 주문해서 먹기로 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억을 지우는 힘이 아니라 뒤엉킨 불행을 교통정리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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