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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공원에서 억새보다 흔들리고 왔다.

by 조매영

하늘 공원,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억새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억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흔들림이 없다. 사람도 각자 견딜 수 있는 불행이 다르다던데 풀과 사람이 같을 수 있을까. 사진을 찍던 사람이 비켜서자 엄마와 아빠가 자리를 잡는다. 엄마 휴대폰으로 한 번. 아빠 휴대폰으로 한 번. 사진을 찍는다. 마음이 소용돌이친다. 풀보다 맷집이 약한 마음을 가진 것 같다.


하늘 공원에는 여자 친구와 먼저 왔다. 여자 친구와 돌아다니니 보기 좋았다. 엄마와 아빠를 부른 이유는 모르겠다. 보기 좋은 감정은 바람과 같다. 보기 좋은 감정에 흔들린 것뿐인데 엄마를 부르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를 쫓아온 것이고.


억새는 으악새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뿌리도 억세고 굵으며 재생력도 강해서 겨울철에 약을 뿌려도 봄이 지나면 반드시 싹이 나는 매우 강인한 식물이라고 한다. 엄마의 사진을 찍어주는 아빠를 보며 강인한 식물의 이름이 비명과 닮은 이유를 생각했다. 비명을 업고 다녀도 끄떡없다는 것일까. 수전증에 카메라 버튼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는 손짓을 본다. 저 손에 나는 그냥 억, 으악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억새의 어원을 알 수 없다.


어릴 적 항상 아빠는 우리보다 앞서 걸었다. 엄마와 이야기하다 보니 아빠가 저 멀리 있다. 언제부터 절뚝이며 걷게 된 것일까. 오랜만에 본 아빠는 절뚝이며 걷고 있었다. 절뚝이면서도 저 멀리 앞장서 걷는다. 그렇게 앞장서 걷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멀 텐데 아직도 모르는 걸까. 나이를 먹을수록 복수심보다 불쌍함이 크다. 불쌍하다 생각하는 내게 증오심이 든다.


엄마 아빠를 보내고 집까지 걸었다. 처음 보는 골목이 있다면 무작정 들어간다던가 괜히 길고양이에게 말을 붙여본다던가 하면서 반나절을 걸었다. 마구 걷다 보니 어릴 적에 연무기를 들고 골목을 헤집고 다니던 아저씨를 따라다니는 기분이 든다. 나는 무엇을 따라다니고 있는 걸까. 뒤숭숭한 마음이다. 스스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기보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이 제일 쉬운 일인 것 같다. 남을 미워하는 일도 부지런한 사람이나 가능하다. 사실 답이 안 나오니까 그렇다. 세상사 모든 일이 명확하진 않다고 하지만 명확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일이니까. 연민의 감정이 든 순간부터 진 느낌이다.


집에 오니 마음 가득 억과 으악이 가득하다. 억새 밭을 보니 숨기 좋아 보였다. 억, 으악 비명 안에는 복잡한 심정을 숨겨 놓기 좋을 것 같다. 나는 새가 아니라 날수가 없다. 쭈그려 앉아 억, 으악 하며 하루를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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