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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01. 2024

공포의 집 첫째 아들

 10살. 악몽을 꾼 날이었다.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고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리모컨이 날아오지 않았다. 눈을 살짝 떴다. 분주히 출근 준비하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손을 내릴 생각도 못하고 사방을 살폈다. 꿈은 반대라고 했던가. 아빠가 보이지 않았다. 인력사무소에 나간 것 같았다. 혹시 몰라 엄마에게 물어봤다. 예상이 맞았다. 아빠는 정말 일을 나간 것이다. 씻지도 않은 채 콧노래를 부르며 밥상에 달라붙었다. 움찔거리지 않고 먹는 밥맛은 꿀맛이었다.


 엄마는 회사에 일이 생겨 빨리 출근해야 한다고 했다. 천 원을 쥐어주며 동생들을 챙겨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학교를 가라고 했다. 알겠다고 건성으로 대답했다. 머릿속엔 이미 오락실과 떡볶이가 가득했다.


 동생들은 자고 있었다. 깨워야겠지. 깨우면 잠투정을 할 것 같아 겁이 났다. 내가 먹은 것을 치우고 보온밥통에서 밥을 퍼 밥그릇에 담았다. 엄마를 찾기 전에 빠르게 밥부터 먹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동생들을 깨웠다. 아직 밥이라는 말도 꺼내지 못했는데 동생들은 울었다. 엄마도 찾지 않고 울었다.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방법이 없었다. 그냥 나도 같이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그래도 우리 집 문을 두드리거나 찾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아빠도 없는데 울음을 삼키면서 밥을 먹였다. 동생들은 울면서 잘도 밥을 받아먹었다. 동생들이 부러워졌다. 아빠는 나만 때렸다. 얘들은 울음과 밥을 함께 삼킬 일이 없겠지.


 고양이 세수를 했다. 눈물 콧물 범벅이라 그럴까. 끈적였다. 비누로 다시 씻었다. 동생들로 앉혀서 대야에 담은 물을 얼굴에 뿌렸다. 눈에 들어갈까 봐 비누칠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바닥에 눈물 콧물이 묻어 나왔다. 길게 늘어진 콧물을 보며 우리는 웃었다. 울다 웃으면 엉덩이에 뿔난다던데 웃음이 참아지지 않았다. 뿔은 몰라도 혹은 많으니 괜찮을 것도 같았다.


 어린이집에 동생들을 데려다주고 나왔다. 개나리반 선생님이 준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학교로 향했다. 교문 앞에서 같은 반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인사를 하다 말고 검지 손가락으로 내 뒤를 가리켰다. 뒤 돌아보니 막내 동생이 있었다. 어떻게 따라왔냐고 물었다. 대답도 않고 막내 동생은 웃고만 있었다. 어린이집에 다시 갈까 하다 포기했다. 담임 선생님한테 늦었다고 혼나는 게 무서웠다. 막내 동생의 손을 잡고 교실로 향했다.


 꾸중을 들을 것을 기다리며 입술을 깨물고 있었는데 호랑이 선생님이 막내 동생에겐 고양이 선생님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께 집에 아무도 없다고 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왔다. 선생님이 부른 것 같았다. 어떻게 부른 걸까.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아빠는 붉은 얼굴이 술을 마신 것 같았는데 술냄새가 나지 않았다. 눈을 피했다. 선생님은 아빠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멀어지는 동생과 아빠의 뒷모습을 보며 수업 끝나고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했다. 집에 바로 가면 분명 맞겠지. 밤늦게 들어가도 맞는 것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맞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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