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매영 Apr 04. 2024

나는 잘 우는 호랑이

9살 스케치

 다락방 문에 귀를 댄다. 요즘 부쩍 아침 일찍 나가긴 하던데 모른다. 확인은 필수다. 혹시 모를 아빠의 코 고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입꼬리가 올라간다. 문을 살짝 열어본다. 잠투정하는 동생들을 깨우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문을 닫았다. 맞지 않는 아침은 항상 좋다.


 나를 깨우러 오는 엄마의 발소리가 들린다. 다락방 문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다락방 문을 여는 동시에 나는 어흥 소리친다. 엄마는 놀라는 척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매번 한다. 내가 호랑이라고 해도 도통 엄마는 믿지 않기 때문이다. 호랑이라고 해도 맞는 건 아프지만 강하니까 괜찮다 해도 믿지 않는다.


 호랑이는 감자채 볶음을 좋아한다. 숨도 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동생들도 밥상에 달라붙는다. 숟가락이 날아오지 않아도 고성이 오가지 않아도 우리는 긴장을 놓치는 법이 없다. 맞는 건 나뿐이었는데 너희는 왜 그러냐 물을 시간은 없었다. 위험은 방심에서 온다. 우리는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리며 숟가락질을 한다.


 엄마는 동생들과 함께 나갔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할 것이다. 방학이 되고 나니 할 것이 없다. 동네 친구들은 시골에 갔거나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텔레비전은 전선 코드가 잘려 있다. 밥 먹을 때 봤다고 아빠가 잘랐다. 눈동자 굴리다 우연히 화면과 눈이 마주친 것뿐인데. 절대 티몬과 품바를 본 게 아니었는데.


 호랑이가 아니라 사자였으면 나도 티몬과 품바가 곁에 있었을까. 방에 굴러다니는 라이터를 집어 들고 창문 앞에 섰다.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창틀에 얹어 놓고 불을 붙였다. 성냥팔이소녀를 생각했는데 금방 쪼그라들었다. 몇 번을 뽑아 태워도 그랬다. 소원을 빌 틈이 없다. 티몬과 품바는 됐으니까 텔레비전 전선 좀 어떻게 해달라고 빌고 싶었다.


 며칠 동안 하원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어린이집에 전화해 동생들을 보내달라고 했다. 엄마가 준 돈으로 간식을 사서 동생들과 나눠 먹으며 노는 것이 좋았다. 원장 선생님이 전화를 받았다. 전화 좀 하지 말고 데리고 가라고 했다. 전화 요금이 한 통당 오백 원이라 했다. 이번엔 동생들을 보내줄 테니 다음엔 꼭 직접 오라고 했다.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전화가 끊겼다. 엄마가 과자 사 먹으라고 준 천 원을 꺼내 만지작 거렸다.


  오백 원으로 할 수 있는 것 컵떡볶이 한 개,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백 원짜리 아이스크림 다섯 개, 과자 한 봉지, 오락실 게임 다섯 판. 그리고 어린이집에 동생들을 보내달라는 전화 한 통.


 오백 원만 쓰고 남은 오백 원을 모아서 전화 요금 나오는 날 아빠한테 주면 안 맞을 수 있을까. 아니 덜 맞을 수 있을까. 현관문 앞 신발 터는 소리 들린다.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지. 다락방으로 가야 할까. 동생들이 오고 있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아빠가 화장실에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들고뛰어 나왔다. 아빠가 누구냐고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뒷덜미를 잡을 것 같다. 귀를 막고 뛴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골목에서 어린이집으로.


 발바닥에 언제 박혔는지 모를 가시가 아팠다. 가시를 빼도 피가 나지 않았다. 발바닥을 털고 있는데 동생들이 보였다. 어린이집에 다시 데려다줄까 하다가 원장 선생님이 집에 전화할까 봐 골목슈퍼로 데리고 갔다. 아폴로 다섯 봉지 샀다. 동생들이 다른 걸 집으려고 하는 걸 겨우 말렸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둘째 두 봉지 막내 두 봉지 나 한 봉지 나눴다. 우리는 말없이 이로 아폴로를 끌어당기며 먹었다. 집에 들어가지 않냐고 동생들은 묻지 않았다. 두어 개 먹더니 미끄럼틀을 타러 갔다. 동생들이 남긴 아폴로가 탐이 났다. 동생들 가방에 넣어주었다. 교회 벽 높은 곳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니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이 되려면 한참 남았다.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이 되면 동생들을 집 앞 골목까지 데려다줘야지. 아폴로가 가방에 있다고 말해줘야지. 중얼거리며 나도 미끄럼틀로 향했다.


 집에 들어가는 동생들을 멀찍이서 지켜봤다. 아폴로가 가방에 있다고 말해주는 것을 깜빡했다. 나중에 말해줘야지. 그리고 한 개만 달라고 해야지. 아빠가 문을 열어준다. 문이 닫힌 것을 보고 창문 아래로 기어가 앉았다. 아직 엄마가 올 시간이 되지 않았다. 엄마와 들어가면 조금 괜찮지 않을까. 내가 없으니 창문에서 고함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창문에서 텔레비전 소리가 흘러나온다. 속으로 어흥 어흥거려도 소용이 없다. 자꾸 눈물이 나왔다.


 주머니에 오백 원을 만지작거리다 교회 시계가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엄마가 오는 시간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해야지. 엄마한테 남은 오백 원을 바로 줘야지. 미안하다고 말해야지. 전화 요금이 오백 원이란 것을 몰랐다고 말해야지.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해야지. 호랑이가 아니라고 말해야지. 고양이라고 말해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