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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30. 2024

낮잠을 잤을 뿐인데

6살, 낮잠을 자다 경기가 일어났다.

 어린이집 낮잠 시간. 나란히 놓인 이부자리에 우리는 모두 자리했다. 가만히 선생님이 읽어주는 동화를 들었다. 잠이 안 와요. 더 놀고 싶어요. 칭얼거리던 친구들은 항상 제일 먼저 잠들었다.


 동화는 끝나가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낮잠 시간에 잠을 자지 않는 아이는 선생님이 미워할 것이다. 실눈을 뜨고 선생님을 살폈다. 동화가 읽는 와중에도 우리를 살피고 있는 선생님이 보였다. 눈을 꾹 감았다.


 선생님이 나가는 동안에도 결국 잠을 자지 못했다. 형광등을 바라봤다. 플라스틱 빗자루 손잡이처럼 생겼다. 저것으로 맞으면 아프겠지. 며칠 전에 빗자루로 맞았던 것이 생각났다. 이미 한 번 부러져서 청테이프로 둘둘 말려 있던 빗자루. 쓸어도 쓸어도 자꾸 생기는 먼지처럼 울음을 비명을 자꾸 만들었던 빗자루.


 몸서리치며 다시 본 형광등,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그만 자라고 만화영화에서 봤던 최면 회전판처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눈을 뜨니 침대였다. 사방이 하얬다. 천국에 온 것일까. 선생님은 앞에서 울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도 있었다. 아빠가 있으니 천국은 아니겠구나. 그럼 지옥인 걸까.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가 누워 있는 침대를 끌고 갔다. 선생님도 엄마도 따라오지 않았다. 잘못했어요. 울지 않을게요. 살려주세요. 소리를 질러도 멈추지 않았다.


 너무 울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검사실에서 나오자 선생님이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보냈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의사 선생님이 그만 집에 가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신발이 없었다. 아빠를 봤다. 속이 울렁거렸다. 집에 가고 싶지 않아 졌다. 아빠는 택시를 잡겠다며 나갔다. 엄마 등에 업혔다. 엄마 등에 얼굴을 파묻고 신발이 어딨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집에 가기 싫다고 중얼거렸다. 멀리 아빠가 잡은 택시가 보였다.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어린이집에 갈 수 있었다. 신발은 신발장에 그대로 있었다. 선생님은 없었다. 새로운 선생님이 있었다. 원래 선생님은 어디 갔냐고 묻고 싶었다. 묻지 못했다. 새로운 선생님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몇 년이 지나고 동네 마트 계산대에서 일하고 있는 선생님을 본 적 있다. 눈을 마주치자 어깨가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선생님 눈엔 내가 아직도 눈 뒤집은 채 거품을 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다. 아는 체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끔찍했지만 어찌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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