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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Jun 04. 2021

헌혈도 못하면서 들어가 본 헌혈카페

 2011년 말, 치료가 끝나자 외래진료를 매주 가야 했다. 혈액종양내과와 대장항문외과였다. 대장항문외과는 마지막 항암이 끝나고 생긴 치루 때문이었다. 대장항문외과는 혈액종양내과 외래진료와 느낌부터 달랐다. 교수님을 등지고 누워 엉덩이를 까고 있으면 괜히 서러워져 눈물이 났다. 매번 잘 아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덧나 있었다.      


 항문외과 진료를 마치고 착잡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대학로를 걸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없었다. 몇 분 걷지도 못하고 쉬기를 반복했다. 헌혈카페 근처를 지나던 중에 헌혈을 권유받았다. 혈액암 환자라 헌혈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죄송하다며 멀어졌다.      


 조금 더 걷다가 계단에 주저앉았다. 굳이 혈액암 환자라고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쉬고 있는데도 체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체력이 부족해서 마음이 불편한 건지 마음이 불편해서 체력이 달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음료 두 개를 사 들고 나왔다. 달달한 것을 먹으니 조금 살만해졌다. 나머지 한 개는 헌혈을 권유하던 사람에게 주었다.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마음은 전해주고 싶었다. 그에게 전해주고 돌아서려는데 불현듯 헌혈카페가 궁금해졌다.      


 무작정 헌혈카페에 들어갔다. 직원 외에 사람이 없었다. 직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헌혈카페를 둘러보았다. 직원은 기계부터 시작해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병원에서 수혈받았던 노란 피(혈소판)와 빨간 피(적혈구)가 태어난 곳이라 생각하니 두근거렸다. 몸 안에 돌고 있는 적혈구나 혈소판의 기억 중에 이 곳이 있는 것 같았다.     


 헌혈카페 견학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직원분은 과자와 기념품을 쥐어주셨다. 헌혈도 안 했는데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지만 한사코 쥐어주셨다. 기념품을 가방에 넣고 과자를 까먹으며 마저 걸었다. 혼자 힘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병원 외에 간접적이지만 함께한 사람들을 만났다. 심장 부근이 간질거렸다. 뒤 돌아 헌혈카페를 보니 고향이나 출발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헌혈을 하지 않았다면 과다 출혈로 죽었겠지. 수치도, 불편한 마음도 간질거리는 따뜻함도 모두 살아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항암이 끝나고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오만이었다. 그만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일상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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