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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y 21. 2021

음료에게 전우애를 느꼈다.

 음료수를 고르던 중 낯익은 음료수 하나가 눈에 띄었다. 갈아 만든 배였다.




 배 특유의 시원한 단맛과 입안에 맴도는 배 퓌레가 인상적인 음료. 한때 나는 이 음료를 밥이나 물 대신 마신 적이 있었다. 첫 항암을 하던 시기였다. 무엇을 먹어도 구토를 하는 통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이 음료만은 괜찮았다. 덕분에 먹는 게 남는 거라던 엄마는 퇴근하고 병원 오는 길이 길어졌다. 병원 근방에는 파는 곳이 없어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병실에 들어오면 보부상처럼 그날 사 온 물건들을 보호자 침대에 나열했다. 갈아 만든 배만 있으면 되었는데 엄마는 꼭 캔 참치나 스팸처럼 아프기 전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도 함께 사 왔다. 몇 번 먹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소용없었다. 왜 자꾸 먹지도 못하는 것을 사 올까. 먹지 못한 것들은 엄마의 저녁 반찬이 되었다. 엄마는 건강하던 내가 맛있게 먹던 모습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고에너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엄마는 구체적으로 무언가가 먹고 싶다는 것은 몸이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타민이 부족하면 과일이 당기고 몸이 허하면 고기가 당기는 것이 근거라고 했다. 설득력 있었다. 음료를 마시다 잠시 멈추고 생각했다. 갈아 만든 배를 몸이 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당류가 부족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수분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 마땅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음료와 내가 인연이 닿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인과 관계라는 게 꼭 복잡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느 날 엄마는 장바구니에서 빵을 꺼냈다. 나를 가졌을 때 빵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했다. 한 입 먹어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먹을 수 없었다. 그때 왜 그렇게 빵이 당겼냐고 물었다. 엄마는 내 얼굴을 한참 보더니, 네가 알지 내가 알겠니.라고 말했다. 키득거렸다. 왜 웃는 걸까. 다그쳐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엄마가 먹었던 빵이 소보루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료가 끝나고 외국에서 숙취 해소 음료로 각광받는 중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도 모르게 몸은 해소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아닐까 소름이 돋았었다. 매번 극심한 오심이 끝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면 갈아 만든 배는 생각도 나지 않았다. 몸은 혹시 갈아 만든 배가 숙취해소처럼  항암 부작용에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찾았던 것은 아닐까. 




 함께 전선을 헤쳐 나온 동지를 보는 것 같다. 반가운 만큼 괴로운 기억도 같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숙취해소제로 유명해지고 파는 곳이 많아진 듯했다. 구하기 쉬워졌다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다시 아플 일이 없을 텐데 왜 든든하다 느낄까. 이내 착잡해졌다.

  

 오랜만에 먹어볼까 싶은데 동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겐 단당류나 아니라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결국 제로 콜라를 들고 편의점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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