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너븐숭이 4.3 기념관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십여분을 걸었다. 신식 건물이 있는 길은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눈이 가지 않았다. 건너편에 제 멋대로 자라 있는 풀들에 눈이 갔다. 우거진 풍경에서 휑한 마음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도착하자마자 묵상의 방으로 향했다. 검은 현수막에 희생자들의 이름 성별 나이 사인이 적혀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적혀 있어, 위 쪽에 있는 이의 정보는 읽을 수 없었다. 깨끔발로 서보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보기도 했지만 볼 수 없었다.
기념관에 가방을 맡기고 주변을 걸었다. 멀리 바다가 보였다. 코를 벌름거렸다. 바다 내음이 진하지 않았다. 밀려간 기억들은 아직 다 쓸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 방언 중에 속솜허라 라는 말이 있다. 4.3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르신들이 자주 했던 말이라고 한다. 뜻은 조용히 해라. 말하지 마라. 당시의 일들을 이야기하면 위로가 아닌 위협이 왔기 때문에 살기 위해 입버릇처럼 하게 된 말이라고 한다.
속솜허라 말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빌레(넓게 펼쳐진 암반지대)에 대자로 누웠다. 생각보다 표면이 많이 거칠었는지 등이 아팠다. 하늘을 봤다. 눈이 부시다 못해 따가웠다. 옆을 봤다. 굴곡진 표면 덕분에 세상이 멀어 보였다. 자리에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눕기 전과 다르게 보였다. 그날은 추웠다고 한다. 추운 날에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보거나 옆을 봤다. 아름답던 풍경 어디를 봐도 고통이 달라붙어 있었다.
속솜은 속으로 쉬는 숨의 준말이라고 한다. 죽어서도 살아서도 희생자들의 속솜은 끝이 없다. 들숨이 있으면 날숨이 있기 마련이다. 이제 살기 위해 숨을 참는 것이 아니라 숨을 쉬어도 되는 시대가 왔다. 바람이 거세다. 자연뿐이던 날숨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도 날숨이 될 수 있다면. 속솜하라는 말이 날숨을 위한 준비의 말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