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름을 중얼거리는 여행

by 조매영

목시물굴을 가기로 했다. 동백 동산 습지센터 정류장에 내렸다. 목시물굴을 다시 검색했다. 지도와 네이버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이 달랐다. 습지센터 직원에게 물어보니 차도를 따라 걷다 보면 표지판이 나온다고 했다. 일단 걷기로 했다. 인도가 따로 없어 차의 방향과 역으로 걸었다. 드문드문 차가 지나갔다. 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풀밭으로 몸을 피했다. 손을 들었다가 어깨를 푸는 척했다. 히치하이크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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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걸은 것 같은데 표지판이 보이지 않았다. 맞는 길일까 의심이 가기도 했다. 둘러봤지만 마땅히 다른 길은 없었다. 잘 포장된 도로를 걸으며 당시에 이 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졌다. 현재 모습으로는 과거의 모습을 추측하기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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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할까 싶었는데, 길 건너편에 비석이 보였다. 가까이 가니 선흘리 4.3 희생자 명단이 적혀 있는 돌이 있었다. 한참을 서서 이름들을 중얼거렸다. 끝에 가서 내가 아는 죽은 사람들의 이름도 중얼거렸다. 그들의 얼굴이나 말투 행동이 떠올랐다. 여기에 적힌 이름들도 누군가에겐 중얼거리는 것만으로 살아 움직일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이름으로 불릴까. 이름을 불리는 일은 이름의 입체감을 키우는 일 같다. 다시 걷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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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10804_072952973_02.jpg 목시물굴 입구


한참을 걸어 표지판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막상 숲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겁이 났다. 뱀이 많다던데 설마 물리는 것은 아니겠지. 온 길이 아까워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들어갔다. 온갖 풀벌레 소리와 작은 동물들의 움직임 소리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목시물굴 입구가 나타났다. 입구가 두 개라던데 내가 온 곳은 작은 입구인 것 같았다. 나무가 우거진 덕분에 동굴 주변은 서늘했다. 동굴 안은 들어갈 수 없어 동굴 입구밖에 볼 수 없었다. 눈을 감았다. 온갖 소리가 들렸다. 온갖 소리가 인기척처럼 느껴졌다. 숨어 있던 사람들 대신 두려움만이 여기에 남아 있었다.


다시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에 밟혀 죽은 뱀을 봤다. 오래전에 죽은 것 같았다. 뱀도 사람도 삶의 터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목시물굴이 차도에서 멀지 않아 놀랐다. 차도가 그날에도 차도는 아니었겠지만, 사람들이 자주 오가던 오솔길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일상을 차마 포기할 수 없던 마음을 학살자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좋아하는 시집이었다. 뱀을 바닥에서 떼어내 숲으로 던져 주었다. 시인도 용서해주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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