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선동 4.3성이 초병으로 보였다.

by 조매영

낙성동에 도착했다. 밭담으로 쓰이던 돌과 산담(무덤 돌담)으로 쓰이던 돌이 번갈아 쌓여 성담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노인들과 여자들이 보초를 섰다고 한다. 지금은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정문 초소

초소를 보니 군대 시절이 떠올랐다. 밤에 초병 근무를 서면 사방에 모든 소리가 인기척처럼 느껴진다. 바람 소리부터 시작해 풀벌레 우는 소리까지.


비가 온다. 비가 오는 날에는 초병들의 발걸음이 유난히 무거웠을 것이다. 경찰은 그걸 보고 비 오는 날에는 빨갱이가 오지 않겠냐며 화를 냈을 것이다.


눈을 감았다. 빗소리 대신 분주한 발소리만 들렸다. 번개가 쳤다. 눈을 감아도 번쩍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숙였다. 눈을 떴다. 총은커녕 아무도 없었다.


초소에서 초소로 담을 따라 걸었다. 보초를 서다 보면 온갖 것들이 그리워진다. 본 적 없는 사돈에 팔촌까지 그리워진다. 노인들은 보초를 잘 못섰다고 경찰들에게 자주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노인들은 어떤 마음으로 성 밖을 살폈을까. 사물은 기억을 머금는다. 밭담과 산담 그리고 절구나 주춧돌이었던 성담을 만지며 이 돌은 어디서 가져왔는데, 이 절구는 누구네 건데 하며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구별 없이 그리워하다 암구호를 잊었을 것이다.


비가 거세진다. 비를 피할 곳이라고는 복원한 경찰지서나 함바집뿐이다. 버스는 한참있다 온다고 한다. 이대로 있다간 이곳에 영원히 갇혀 있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무작정 뛰어나오니 들어올 때 보지 못한 사무실 겸 화장실이 보였다.

성담에 뚫린 구멍이 총안이다.

사무실 입구에서 성담을 봤다. 밖에서 성담을 보니 다르게 보였다. 제주도 돌은 육지로 함부로 들고 갈 수 없다고 했던가. 제주에서 떠날 수 없다 생각하니 성담이 성담으로만 보이지 않았다. 오래된 물건은 도깨비가 된다던데 성담도 단순히 쌓여 있는 담이 아니라 도깨비일지도 모르겠다. 무기를 겨누던 곳이던 총안이 성담의 눈으로 보였다. 이제 성담은 없고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사방을 경계하는 초병이 여기 있었다.


누구를 경계하고 누구를 지키기 위해 버티고 있는 것일까. 시간은 불신을 낳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


성담은 더 이상 경찰의 편의성을 위해 존재하지 않았다. 핍박받은 사람들의 흔적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핍박받은 사람이 없다 주장하는 사람을 경계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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