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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27. 2024

투병 선배님, 답장은 받았다 치겠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지난밤 당신이 꿈에 나왔습니다. 얼굴이 없는 당신이 가만히 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살아계십니까. 저는 살아 있습니다. 당신의 병명이 당신의 얼굴처럼 기억나지 않습니다. 응급실에서  혼자 혈액종양병동으로 올라간 것을 보면 백혈병은 아니었겠죠. 당신은 처음으로 만난 투병 선배였습니다. 당신이 담담한 태도로 병을 마주 하는 것을 보고 병을 대하는 법에 대해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당신에 대해 뭐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네요. 기억력 나쁜 후배라 죄송합니다.


 살아계십니까. 저는 또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내일이 되면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매일이 오늘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당신은 얇은 이불로 도저히 가릴 수 없던 복수로 부푼 배뿐입니다. 부푼 배를 생각하면 당신이 자꾸 죽었을 거라 단정 짓게 됩니다. 죄송합니다. 옆 침대에서 바라본 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마주하는 오늘은 통증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에겐 오늘이 죽음이고 내일이 삶이었습니까. 통증뿐인 오늘은 생각할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살아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오늘을 살고 당신은 내일을 사니 만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항암 해독에 좋다며 추천해 주신 녹두죽은 결국 해 먹지 않았습니다. 맛이 없을 것 같았거든요. 대신 항암 휴식기에 비트를 요구르트에 갈아 마셨습니다. 비트가 혈액을 맑게 해 준다고 그러더군요. 달달하니 먹을만했습니다. 제가 당신의 투병 선배였다면 비트를 요구르트에 갈아 마시는 것을 추천했을 것 같습니다. 아니다 지금 추천하겠습니다. 당신이 제 추천을 무시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걸로 퉁치시는 것이 어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먹는 모습에 입맛을 다시던 당신이 생각납니다. 저는 응급실 병상에서 때처럼 지금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해치웁니다. 먹방을 추천해 주셨지만 먹방은 하지 않습니다. 대신 글을 씁니다. 이제는 잘 드실 수 있으십니까. 녹두죽 말고 좋아하시는 음식은 무엇입니까. 당신과 여러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저는 치킨을 좋아합니다. 닭다리를 양보하고 싶습니다. 닭다리파가 아니시라면 죄송합니다.


 제가 촉이 좋습니다. 당신도 저도 오래 살 것 같습니다. 근거는 없습니다. 촉이란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끝까지 근거를 대라고 하신다면, 제가 당신의 태도를 보고 배워 이렇게 살아 있으니 당신도 살아 있을 것 같다고 대답하겠습니다. 저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당신도 제 이름을 모를 것 같습니다. 서로 구글로 검색해서 부고를 알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살아 있습니다. 당신도 살아 있습니다. 안부가 궁금합니다. 정확히는 좋은 안부가 궁금합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무소식은 대부분 부고였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서로 아는 것이 없으니 소식이랄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무소식도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부고가 될 일이 없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건강하고 행복한 미소 짓는 사람들 모두 당신이라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니 항상 웃으며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가 스쳐 지나갔길 언제가 스쳐 지나가길 바라겠습니다. 당신도 투병이 잘 끝나셨으면 좋겠습니다. 답장은 편지 완성된 순간 받았다 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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