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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02. 2024

독이 독을 지운다.

 마지막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 회진. 교수님은 혹시 모를 상황을 위해 동생들 유전자 검사를 미리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항암이 실패해 조혈모세포이식을 해야 될 수도 있으니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돌려한 것이다. 앞선 세 번의 항암 치료 때는 하지 않은 말이었다. 


 재수 없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웃고 있던 표정을 죽이고 멀뚱히 교수님을 봤다. 교수님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화가 났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알겠다는 말소리가 옆에서 났다. 고개를 돌려 엄마를 봤다. 얼굴이 허옇게 질려 주근깨가 도드라져 보였다. 왜 시작도 하지 않은 항암 치료를 실패한 것처럼 괴로운 표정을 짓는 걸까.


 살이 많이 쪄서 항암제 용량이 많이 늘었다. 보통 용량보다 몇 배는 많다고 했던가. 항암제를 달아주던 간호사 선생님이 약제부에서 오더가 제대로 내려온 것이 맞는지 확인 전화가 왔다고 했다. 나는 용량도 높으니 항암도 잘 되겠다며 낄낄거렸다. 간호사 선생님도 웃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가고 눈을 감았다. 꺼림칙한 무언가가 혈관을 채우고 있었다. 항암제는 발암물질이기도 하다던데 이 불쾌감을 보면 납득이 간다. 독이 독을 지우려고 몸 안을 헤집고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르고 온다던 엄마가 왔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말이 없었다. 아직 항암제가 머리까지 다다르지 않았나. 짜증이 올라왔다. 항암제야 짜증도 독이다 잡아먹으렴. 화를 누르며 작은 목소리로 재차 물었다. 엄마는 동생들에게 유전가 검사 이야기 했다고 했다. 궁금증을 해결되어 그만 자려고 눈을 감던 중 엄마의 사족이 들려왔다.


 바로 밑에 동생은 알겠다고 했지만 막내 동생은 검사하기 싫다고 했단다. 엄마는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달았는지 당황해했다. 나는 그럴 수 있다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가족은 개 풀 뜯어먹는 소리. 정말 아무렇지 않았다. 눈을 아무리 질끈 감아도 잠이 안 왔다.


 겨우 잠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일어나 링거대를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변기에 대고 구역질을 했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다 투명한 독이 쏟아지고 있었다. 문 밖에서 엄마가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다 말하려는데 독이 더욱 쏟아져 나왔다. 그래도 조혈모세포이식도 아니고 검사 자체를 거절하다니. 괜찮지 않았다. 괜찮다. 뒤엉킨 마음이 변기에 가득하다.


 항암이 끝난 후 회진에서 교수님은 유전자 검사는 문제가 생겼을 때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항암이 잘 되었다는 것보다 동생이 유전자 검사를 거절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었다. 이유를 묻진 않았겠지만 애써 변명을 하려고 했을 나를 생각하니 끔찍했다.

 

 막내에 대해 미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독을 모두 쏟아내고 생각해 보니 우리 집은 그럴 수 있는 집이다 싶었다. 자기 몸 하나 챙기기 급급한 집이었으니까. 내 몸은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주지 않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았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겠다 싶었겠지. 살긴 살았으니 틀린 생각은 아닌 것 같았다. 정말 동생이 밉지 않았다. 독이 독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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