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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Apr 08. 2024

누나에게

2012.08.16

 안녕? 누나. 한참 비가 내리더니 이제 내리지 않는다. 빗소리에 사이다 좋아하던 누나 생각이 났어.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사이다의 탄산처럼 마음을 찌르더라. 난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어. 내일로 여행을 다녀왔고, 응급실도 다녀왔어. 별 일 아니었어. 그냥 결석이 또 말썽이었어. 자고 일어나니까 오른쪽 옆구리가 아프더라. 역대급으로 아파서 처음엔 맹장이 터진 줄 알았다니까. 붉은 소변을 보고 나서야 결석이구나 싶었지.


 구급차를 부를까 하다가 말았어. 결석 때문에 부르기엔 부끄럽더라. 그래서 그냥 버스 타고 가기로 마음먹었어. 아픈 와중에도 떡진 머리로는 가면 안 될 것 같아 머리도 감고 가방에 시집도 넣었어. 누나도 알 거야. 아파 죽을 것 같아도 잘 드는 진통제 맞으면 거짓말처럼 통증은 사라지고 허무함만 남게 되는 거. 그때 시집을 읽으면 허무함이 조금은 중화되지 않을까 싶더라고. 택시가 아니라 버스를 타려고 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아? 출근시간대였거든. 길음동에서 성신여대 쪽이 특히 정체가 심하던 걸로 기억해서 나름 머리를 쓴 거야.


 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자리를 양보받았어. 손잡이를 잡고 가고 있었는데 식은땀이 미친 듯이 쏟아지더라. 입술을 깨물었는데도 앓는 소리가 멈출 생각을 않았어. 결국 주저앉았지. 부끄러운 것보다 아파서 죽을 것 같았어. 그게 안쓰러웠는지 대각선에 앉아 있던 분이 자리를 양보해 주시더라고.


 예상대로 길음동에서 성신여대 가는 방향이 많이 막히더라. 양보받은 덕분에 끝까지 버스를 계속 타고 갈까 했었는데 결국 내렸어. 내리자마자 고민도 없이 119를 불렀지. 구급차는 백혈병 진단받았을 때 처음 타고 이번이 두 번째로 타는 건데 기분이 참 묘했어. 사이렌이 울리니까 차들이 잘 비켜주더라고. 그때도 그랬겠지. 신기하더라. 아참 결석은 이제 괜찮아졌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3분 카레 기억나? 병동에 있을 때 내가 카톡으로 카레 먹고 싶다고 하니까 누나가 복도에 3분 카레 숨겨놨으니 찾아보라고 했던 거. 힌트도 안 줘서 정말 구석구석 다 찾아봤었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뭐 하냐는 물음에 카레 찾는다고는 말할 수 없어 얼버무리느라 얼마나 진땀을 뺐던지. 그래도 덕분에 맛있게 먹었다.


 우리들은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닌 거 알지. 마지막으로 연락한 내용 기억나? 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입원했다는 이야기였어. 그 후로 연락이 안 되었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누나 부고 소식을 구글 검색으로 알아야겠나. 나는 아직도 건강해. 그리고 자주 서글퍼. 지금도 서글퍼지네. 아웃백 가기로 했잖아. 폭립 사준다며. 다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아웃백 꼭 가자고 했잖아. 누나 생각난 김에 조만간에 혼자라도 아웃백 가서 배 터지게 폭립을 먹을 생각이야. 부럽지.


 누나는 죽었고 번호도 없는 번호가 되었는데 카톡은 그대로 있다. 누나 옆모습도 프로필 사진에 그대로 있다. 그냥 내가 버릇없어서 연락 안 하는 거였으면 좋겠다. 알아. 누가 부고 소식 가지고 장난을 치겠어.


 편지 쓰니 울적해지네. 피파 할 거다. 그런데 난이도는 최고로 낮게 할 거다. 이기고만 싶다. 죽음에도 삶에도 이기고만 싶어. 그리고 치킨도 먹을 거다. 일차원적인 쾌락에 빠져 있다 보면 금방 잊지 않을까. 이제 그만 써야겠다. 날이 참 습하네. 안녕. 가도, 좀 좋은 계절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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