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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매영 Mar 22. 2024

호빵맨만 머리를 교체하지 않습니다

 앞 머리카락이 눈을 찌른다. 두 달 가까이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머리를 자른다고 하니 호빵맨이 된 것 같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은 머리를 잘랐는데 두 달이나 지나서일까. 용량이 부족한 느낌이다. 매번 교체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나와 호환성 있는 머리는 다른 사람의 것에 비해 용량이 많이 적은 것 같다. 업데이트 안되려나.




 머리를 한 번 자르고 더 이상 자르지 않아도 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자고 일어나니 베개가 머리카락 투성이었던 날을 기억한다. 첫 항암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병동 사람들 대부분이 대머리였지만 나는 비켜갈 줄 알았다. 항암이 끝나고 나서도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아 나는 특별하다 싶었다. 특별하긴 개뿔 옆 침대 아저씨한테 대머리라고 놀리기까지 했는데 부끄러워졌다. 베갯잇에 단 하나도 꽂혀 있지 못하고 나자빠져 있는 머리카락. 매가리 없는 모양새가 꼭 나를 흉내 내는 것 같아 짜증이 올라왔다.


 아저씨가 잠에서 깨기 전에 링거대를 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문을 닫고 바로 거울을 봤다. 두상이 나쁜 편이 아니니 대머리여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는데 대머리 총각은 무슨 골룸이 있었다. 항암 전에 미리 머리를 자르라고 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말을 들을 걸. 아니다 머리를 자르면 진짜 환자가 될 것만 같았다. 가짜 환자 진짜 환자가 따로 있나 싶었지만 마음가짐이란 게 있지 않나. 나는 잠깐 아프고 말 사람이라 믿고 싶었다.


 결국 다음 항암 전까지 가지는 휴식 기간에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 퇴원하던 다시 군복으로 환복 했다. 평소에 그리 답답하던 군모가 어찌 그렇게 반가웠던지. 군모는 내 치부를 가려주었지만 군대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진짜 환자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던 날은 병원에서 왔다.


 사단 군종장교와 간호장교가 사단 환자들 위문을 위해 군 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피자와 콜라를 잔뜩 들고 왔다는 소식에 급히 내려갔었다. 피자와 콜라가 탐이 났다. 그리고 겸사겸사 부대에 있는 짐을 돌려받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백혈병 의증으로 군 병원에서 바로 민간 병원으로 후송되었던 터라 부대에 짐이 그대로 있던 상황이었다. 내려가니 강당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모두 자리를 잡고 피자를 먹으며 군종 장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군종 장교는 늦은 나를 보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구체적으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머리를 가지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우스갯소리와 함께 피자를 먹던 장병들이 나를 쳐다보며 웃었던 것은 생생하다. 남 놀리는 일에는 왜들 그렇게 단합력이 좋아지는 걸까. 나는 당황해서 백혈병 환자라서 머리가 이렇다고 했다. 간호 장교님께 전달할 말이 있었는데 없으시면 이만 돌아가 보겠다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로 향해 걸었다. 마음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지만 넘어질까 무서워 그럴 순 없었다.


 병실 침대에 앉아 생각했다. 진짜 환자나 가짜 환자나 타인에겐 아무 의미 없구나. 머리카락이라도 부르기 민망한 잔털을 쓸어 넘기며 다음에 항암 하러 입원하면 머리부터 잘라야겠다 다짐했다. 진짜 환자의 머리를 달고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당당하게 피자를 먹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부끄럽고 짜증 나고 우울했지만 피자는 아른거렸다.

 내가 있는 병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군종 장교와 군종병이 병실에 찾아왔다. 별로 반갑지 않았는데 군종병 손에 들려 있는 피자는 반가웠다. 사과를 하는 군종 장교의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피자를 받아 들었다. 용서는 당신이 아니라 피자 덕분에 하는 겁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뺏길까 봐 그럴 수 없었다.


 2차 항암을 위해 입원하고 원내 이발소 아저씨에게 머리를 잘렸다. 비슷한 시기에 항암 하러 들어온 아저씨에게 놀림받았지만 굴하지 않았다. 진짜 환자 머리를 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짜 환자 머리였다면 도망갈 생각부터 했겠지. 그 이후 치료가 끝날 때까지 대머리였다. 머리 자를 일이 없었다. 하나의 머리로 견뎌야 했기 때문에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다른 생각을 채우기엔 용량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미용사가 머리를 만질 때마다 식은땀이 나서 가기 싫은 것도 있다. 피하지 말고 인정해야지. 새로운 머리를 가지는 것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머리를 자르지 못하던 시기에 비해선 그나마 다행이지 않나. 용량이 가득 찬 상태로 무얼 할 수 있겠나. 멍한 것을 보니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오늘 퇴근하면 머리를 꼭 잘라야겠다. 새로운 머리에는 즐거운 일이 조금 많이 채워졌으면 좋겠네.


  용감한 우리의 조매영 신나는 모험 짠짠짠 ♬ (호빵맨 엔딩곡 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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